졸음을 깨기 위해서는 누군가 쉼 없이 떠들거나 신나는 음악이 최고다. 같이 떠들 사람은 없었기에 찬혁은 라디오를 켰다. 가끔 라디오를 들었기에 주파수를 따로 조절할 필요는 없었다.
-최아정의 파워타임! 반갑습니다. 저는 DJ 최아정이에요.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라디오 DJ목소리에 찬혁은 졸음이 달아나는 걸 느꼈다. 연기자로 인지도를 높인 최아정은 라디오 DJ로도 활약이 좋았다. 가끔 듣는 방송이었지만 언제 들어도 졸음이 달아나는 명쾌한 목소리였다. 끄덕끄덕. 만족한 얼굴로 찬혁이 차를 계속 몰아갔다. 영동고속도로를 한참 내달리는 사이 라디오에서는 DJ와 초대손님들의 대화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신청곡들도 경쾌했다. “흥흥.” 탁탁. 찬혁도 운전대를 가볍게 두드리며 흥얼거렸다. 살짝 몰려오는 식곤증을 그렇게 날려 보내던 중이었다.
-속보입니다.
갑자기 들려오는 묵직한 남자아나운서 목소리에 찬혁의 시선이 힐끔 라디오로 향했다. 곧 라디오에서 분명한 발음으로 소리가 들려왔다.
-강원도 평창의 탄광문화촌에서 관광용으로 개조된 탄광이 무너진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현재 입구가 막힌 탄광 안에는 현장학습차 관광 중이던 유치원생 15명과 인솔교사 두 명이 갇힌 상태입니다. 사건 발생 30분이 지났지만 평창 소방당국은 장비 부족으로 구조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속보를 귀에 담으면서도 찬혁의 머리가 조금 복잡하게 돌아갔다. 대회가 펼쳐지는 곳에서 그리 머지않은 곳이다. 누군가 죽어가는 사이 경기 관람을 하는 게 과연 옳을까? 현재 갱도에 갇힌 아이들은 찬혁과 일면식도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쉽게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대회를 치루는 애들도 아이들이고, 갇혀 있는 애들도 아이들이다. 순간 찬혁의 머릿속에 손지연이 떠올랐다.
-제 연기 보러 오실 거죠?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한 약속이 떠올랐다. 시간을 확인하니 바지런히 가야 대회 시작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거 같았다. 순간 찬혁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손지연과의 약속. 물론 중요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사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재단 일을 하며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진 찬혁으로써는 그저 뿌리칠 수 있는 일 만은 아니었다. 약속과 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