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그럼요. 준성이 형.” 준범의 말에 앞서 대답한 고준성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기억력이 좋네.” “큰아버지랑 너무 똑같으신데, 몰라보면 됩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고준성이 수긍하자 준범이 물었다. “그런데 이 야밤에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너 이 새끼, 돈 좀 벌었다고 아주 기고만장하시던데?” 그 말을 들은 준범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어졌다. 아까 전의 일로 비비 꼬인 심사가 당연할지 몰라도 준범 또한 그들이 달갑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변이 온통 종친들의 집인데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준범은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조용히 말했다. “술이 과하신 거 같은데, 들어가 쉬시죠.” “뭐? 이 새끼 봐라. 술 처먹었으면 곱게 찌그러지라는 거야?” “낮에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 새끼 말하는 싸가지 좀 보게. 형이 이야기하는데 꺼지라고? 죽은 네 아버지가 그렇게 알려 주디?” 그 말에 준범의 마음속에 새긴 참을 ‘인’ 자가 뚝 끊어졌다. ‘이런 씨발 놈의 새끼들이!’ 준범은 태어나 처음으로 머리에 피가 몰릴 정도로 화가 났다. 그러나 한 가닥 이성을 부여잡았다. 푸닥거리를 하더라도 장소가 너무 좋지 않았다.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다른 종친들의 귀에 들어가기 좋았다. ‘어떻게 쌓은 이미진데.’ 준범은 일단 장소부터 옮기기로 했다.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진 준범이 고준성과 다른 사촌 형제들에게 말했다. “따라와.” 준범이 그 말과 동시에 먼저 몸을 움직이자 고준성이 울컥했다. “뭐? 저 새끼가!” “야야, 참아.” “저놈 말하는 거 못 들었어?” “어른들 계시잖아.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다른 사촌의 만류에 아차 싶은 고준성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준범의 뒤를 따랐다. 준범은 멀리 갈 것도 없이 뒷산으로 향했다. 사락. 발치까지 자란 풀을 헤치며 10분 정도 산을 올라가자 공터가 나타났다. 수풀이 우거져 마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위치 죽이는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준범이 그 속에 들어가 서자 이내 고준성과 다른 친척들이 도착했다. 고준성이 한 바퀴 돌아보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장소 잘 골랐네.” “내가 생각해도 그래.” “너 이 새끼가. 자꾸 반말하는데, 그러다 혼난다.” 나지막이 경고하는 고준성이었지만 이미 심사가 뒤틀린 준범에게는 딱 한 가지 소리로 들렸다. “개소리 말고.” “저 새끼가 뭘 믿고 이빨을 털어?” 비아냥거리는 고준성의 목소리에도 꿈쩍하지 않은 준범이 나지막이 물었다. “아까 한 말, 실수 아니지?” “아주 똑바로 이야기했다. 왜 떫어?” 그 말을 들은 준범의 입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빌 생각은 접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