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네. 사장님께서 급한 일로 출장을 가시느라 자네를 보지 못하시네.” “네?” 일식은 당황해서 순간 손에 쥔 눈깔사탕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회사를 구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러나 도움을 줄 당사자가 자리를 뜨다니. 이런 난감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언제 돌아오시나요?” 일식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고 물었다. “중요한 바이어를 만나 상담을 하시느라 해외로 출장을 가셨네. 돌아오시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걸세.” 최학수는 아이를 상대로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김명철의 말을 떠올리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눈빛이 아직 죽지 않았어!’ 최학수가 보기에 일식은 아직 기가 죽지 않았다.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 실장님을 곤란케 해드려 죄송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쇼.” 일식은 말을 마치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식은 바보가 아니다. 김관희가 해외출장을 갔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일식은 쓴웃음을 머금고 천천히 문 밖으로 나갔다. “이보게!” 최학수가 나가는 일식을 불렀다. “이건 뭣 하지만 찾아온 자네의 정성을 생각해서 주는 사장님의 성의라고 생각하게.” 최학수는 하얀 봉투 하나를 일식의 손에 쥐어 주었다. “차비나 하도록 하게.” 봉투를 만져보니 제법 두툼했다. 어림잡아 백만 원 정도. “아닙니다.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올 정도로 어렵기는 하지만 집에 갈 차비쯤은 제게도 있습니다.” 일식은 당장 버스비도 한 푼 없으면서 끝까지 허세를 부렸다. “그 돈, 실장님 자녀분들 과자나 사 드리세요.” 일식은 피식 웃더니 최학수에게 말했다. 백만 원, 큰돈이다. 하지만 백만 원으로는 지금 일식 상사가 처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었다. “이, 이보게.” 최학수는 일식의 말에 당황해 뭐라 할 말을 잊었다. ‘이 아이는 내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눈치 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