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다. 다소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야구계는, 특히 실업야구계는 일식 파이터스의 창단으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프로야구의 출범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일식 파이터스의 창단으로 다소나마 띄울 수 있게 되었으니까. 대학 야구부 감독들은 일식 파이터스가 진학하기로 한 고졸 선수들을 데려가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일식 파이터스가 제자들을 데려가면서 불만을 누그러뜨렸다. 프로야구단이 출범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대졸 선수들이 프로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에 갈 수 있는 대학출신 선수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실업 야구단이 하나 늘면 그만큼 대졸 선수들이 취업할 수 있는 곳이 늘어나니 마냥 불만을 품을 수는 없었다. 배구계는, 특히 실업 배구계는 야구계와는 다르게 침울하기 짝이 없었다. 배구는 지난 76년 여자 배구가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구기종목 사상 최초로 메달을 획득하고 78년 남자배구가 세계 배구 선수권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하면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배구계는 팬들의 인기에 부응하기 위해 기존의 실업연맹전을 1984시즌부터 ‘대통령배 배구대회’로 세미 프로화하여 농구와 함께 대표적인 겨울철 실내 스포츠로 정착시키기에 이르렀다. ‘배구대제전’이라고도 하며 이때부터 불렸던 애칭이 ‘백구의 대제전’이다. 하지만 이런 배구의 인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세계 그룹이 운영했던 세계 여자 배구단이 해체의 위기에 놓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