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출신으로 와세다대학을 중퇴하고 선원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했으나 실패한다. 이후 철도회사, 신문기자 등을 거치면서 노동운동에 전념하게 된다. 그러다가 나고야 공산당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서 『바다에 사는 사람들』이란 작품을 탈고한다. 이후에도 끊임없는 작품활동과 사회활동에 매진, 1944년 개척단의 일원으로 만주 개척촌에서 있다가 이듬해 10월 열차 안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 작가인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매춘부』, 『문예전선』, 『바다와 산』, 『계곡에서 사는 사람들』,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 등이 있다.
사생아로 태어나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려서는 행상을 하는 부모를 따라 싸구려 여인숙에서 지냈고, 성장 후에는 가정부와 노점상, 여공, 카페 여급에 이르기까지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리고 동거와 이혼을 거치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아키뉴마 요코란 필명으로 활동한 그녀는 주로 서민의 애환을 담은 작품을 썼다. 자신의 유년시절의 추억과 역경을 담은 자전적 소설 『방랑기』로 60만 부 이상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고, 1949년 『철 늦은 국화』로 제3회 여류문학자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푸른 말을 보다』, 『옛 모습』 이 있고, 『청빈의 글』, 『굴』, 『남풍』, 『파도』, 『철 늦은 국화』 같은 소설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급생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교우하며 문학에 대한 열의를 다졌다.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무명작가의 일기』를 발표하고 호평을 받으면서 일약 신진작가가 되었다. 이후 『진부부인』을 비롯해 50편에 이르는 장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신현실주의 문학의 새문을 열었다. 이후 『문예춘추』를 창간하였고,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 등을 만드는 등 작가의 복지, 신인의 발굴 육성 등에 공헌하였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무명작가의 일기』, 『출세』, 『아버지 돌아오다』, 『도주로의 사랑』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정치적 성향이 강한 야마구치현의 지역적인 영향으로 문학활동을 하면서도 학생운동 때문에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는 등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초기 작품은 서정적인 로망주의에서 후에는 자연주의로 바뀌어 갔다. 뛰어난 성격묘사와 함께 민중의 관점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독자적인 작풍을 세웠다. ‘자연주의의 선구자’라고도 불리며 문학사적 위치가 매우 높지만, 그가 실제로 문단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만년의 일이며 그의 작품이 정당하게 평가받기 시작한 것은 그가 병으로 쓰러져서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의 주요작품으로는 단편집 『도쿠호집』을 비롯해 『취중일기』, 『운명』 『봄의 새』 등 다수가 있다.
무명시절이 거의 없이 화려하게 등단해 작품활동을 했다. 일본 고대 역사를 소재로 한 단편 『태양』을 발표하며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했고, 이후 『파리』 등의 작품으로 기쿠치 간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과 『문예시대』를 창간하는 등 신감각파의 주요 작가로 대두되면서 문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항상 실험적인 정신으로 다양한 주제와 내용의 작품을 탄력적이면서도 화려한 문체로 써내려간 그는 ‘소설의 신’이란 지칭까지 얻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기계』, 『파리』, 『문장』, 『가족회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