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찬이가 그림지도를 그리게 된 이유는 무서운 괴물에게 쫓기다 잡혀가는 생각이 자주 났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바지를 추켜올리려고 할 때 괴물이 바지를 내리고 변기 속으로 끌고 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희찬이는 화장실에 갈 때 후딱 나오려고 팬티만 입고 들어갔다. 놀이공원에 가도 롤러코스터나 바이킹을 타지 못했다. 롤러코스터가 괴물로 변신해서 자기를 하늘 끝까지 데리고 갔다가 뻥 차 버릴 것 같았다. 날개도 없는데 허공에서 데굴데굴 구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렇게 겁이 날 때마다 희찬이는 할머니 옆에서 그림지도를 그렸다. 그림지도를 그리다 보면 괴물한테 끌려갔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안심이 되기도 하고,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노는 기분이 들어서 무서움도 금세 사라졌다. --- p.8-9
선생님은 키가 작고 말랐다. 머리카락은 길고, ‘함초롱’이란 이름만큼 얼굴도 예쁘다. 왼쪽 발목에는 은 발찌를 하고 다닌다. 그래서 선생님이 걸을 때마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학교에서 희찬이네 선생님만 발찌를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일기를 쓰면 빨간 펜으로 댓글을 달아 준다.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같다. 엄마 아빠는 식당 일 때문에 바빠서 이야기를 못 들어 주는데. 그래서 희찬이는 선생님의 댓글을 읽고 또 읽는다. 어떤 건 외운 것도 있다. --- p.14
‘그래! 나에게는 그림지도가 있어. 지도를 따라가면 선생님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선생님을 만나겠지? 과자도 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이야기도 많이 할 거야. 아이들에게 말하면 엄청 부러워하겠지? 서로 이야기해 달라고 내 주위에 몰려들 거야. 선생님 집에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찾아간 나를 멋지다고 생각할 거라고. 단짝친구가 생길지도 몰라……. 게다가 난 선생님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너무 궁금해. 내 방에는 침대에 책상이 있고, 책상 위에는 내가 지금까지 조립한 로봇들이 세워져 있는데……. 선생님 방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희찬이는 선생님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희찬이의 말을 들어주고, 떨어진 단추도 챙겨 주고 걱정해 줍니다. 그래서 희찬이는 삼총사가 괴롭혀도 학교에 가는 길이 즐겁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만 선생님이 폐렴에 걸려 당분간 학교에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희찬이는 선생님의 집을 찾아갑니다. 낯선 곳을 혼자 가는 일이 처음이지만 조금도 떨리지 않습니다. 희찬이에겐 선생님의 집으로 가는 그림지도가 있고,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이 생겼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