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어 봐!" 패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방 안을 이리저리 오갔다. "좋은 생각이 있어. 베르길리우스를 80줄이나 해석하는 건 너무 많은 게 사실이야. 특히 로잘리한테는. 조금 전에 교수님이 하는 얘기 들었지? 가장 강한 사람의 능력을 기준으로 근무기준을 정하는 건 옳지 않아. 가장 약한 사람을 선두로 달리게 해주지 않는다면 혼자 뒤처지게 될 거야. 로디가 노동계급의 결속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한테 이해시키려 했던 건 바로 이거야. 일의 종류를 떠나서 노동자들은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해.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보호해야지. 로잘리를 돕는 건 우리 모두의 의무야." "하지만 어떻게?" 프리실라가 열변을 토하고 있는 패티의 말을 막았다. "베르길리우스 조합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매일 60줄만 공부하게 해 달라고 파업을 하는 거지." "아!" 로잘리는 패티의 대담한 제안에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랐다. --- pp.63~64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야. 그런데 키드 얘기는 언제 할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로잘리의 보랏빛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커졌다. "키드 얘기랑 똑같잖아! 나는 책을 읽으면서 곧바로 깨달았어. 그래서 아주 힘들게 키드를 설득해서 그 책을 읽게 만들었지. 앞부분을 읽을 때는 코웃음을 치더니 점점 책에 빨려 들면서 자기와 똑같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어. 지금은 그 책이 '운명의 손'이었다고 말하고 있어." "키드의 얘기랑 똑같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키드한테는 소설 속 주인공 로사몬드처럼 행실이 고약한 영국인 후견인이 있어. 어쨌든 키드의 후견인은 영국인이고, 그래서 키드는 그 사람도 행실이 나쁠 거라고 생각해. 그 사람은 혼자서 살고 있어. 주위에는 카우보이들뿐이지. 그 사람 집에도 다정하고 여성스러운 손길이 필요해. 그래서 키드는 숙녀가 되기로 결심한 거야. 목장으로 돌아가서 후견인이랑 결혼을 하고, 그 사람의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야." 패티는 침대에 쓰러지더니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고, 로잘리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사나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 내가 볼 때는 너무나 낭만적인데." "키드가 다정하고 여성스런 손길로 그 사람을 돌본다고? 키드는 한 시간도 여자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애야. 걔가 만약에……." "사랑은 더 놀라운 기적도 만들어 내는 법이야. 두고 봐." --- pp.185~186
"서둘러! 코를 빨리 오려. 숨이 막힌단 말이야!" "말짱한 베개 커버를 망가뜨리는 건 나쁜 짓이야." 프리실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선교 기금 모금함에 헌금을 할게." 프리실라와 코니는 코와 눈을 오려 낸 뒤 태운 코르크로 히죽거리는 입과 심하게 휜 눈썹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베개 커버가 중간에 벗겨지는 일이 없도록 목둘레로 단단히 묶었다. 귀가 아래로 축 늘어진 채 흔들거렸다. 패티는 지금까지 무덤을 떠난 그 어떤 유령보다도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이렇게 준비를 하느라 한참을 보냈고, 시계 바늘은 어느새 12시 15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가 자정을 알릴 때까지 기다릴래. 그때 에발리나의 방으로 옷깃을 휘날리면서 들어가는 거야. 그 다음 날개를 흔들면서 속삭이는 거지. '이리 와!'라고 말이야. 멍키스패너랑 레몬 파이는 침대 발치에 놓고 올 거야. 그럼 아침에 깨어나서 꿈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 "비명을 지르면 어떻게 해?"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에발리나는 유령을 좋아하거든. 특히 사촌 수잔의 유령은 더 좋아해. 아까도 수잔을 만나면 기쁠 거라고 말했어." "그래도 비명을 지르면 어떻게 해?" "걱정할 거 없어! 뛰어와서 침대에 숨으면 돼. 아이들이 비명 소리에 깨어날 때쯤이면 나는 벌써 푹 잠이 들어 있을 거야."
엄격한 기숙사 여학교 세인트 우르술라. 하지만 교칙과 담장으로도 64명의 여학생들이 발산하는 다채로운 개성을 억누를 수는 없다. 특히 학교 제일의 말괄량이 패티, 그리고 두 단짝 코니와 프리실라는 언제나 재치 있고 악의 없는 장난으로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얄미운 친구를 골려 주거나 예뻐지고 싶은 열망으로 엉뚱한 소동을 벌이기도 하지만, 친구를 위해 투쟁하거나 희생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대담하고 솔직한 성격의 패티가 중심이 되어 사랑스런 사춘기 소녀들의 이야기가 유쾌하게 전개된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미래에 관한 십대 소녀들의 고민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가운데 마침내 졸업을 앞두게 된 패티와 친구들. 말괄량이 숙녀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