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문의 삶과 학문 세계는 나를 넘어서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릴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삶의 의미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은 8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한 노학자의 삶에서 감동을 느끼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p.11
모든 것이 시장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시장전체주의 시대에 학문의 독자성을 지키고 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옹호하는 박이문의 삶과 사상을 재구성하여 스러져가는 학문과 예술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세속적 물질주의에 맞서 정신적 가치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한 편의 평전을 쓰려 했다. 그의 삶과 사상의 흩어진 편린들이 아니라 전체적인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독자들에게 그려 보이려 했다. ---p.15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중요한 것들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러나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정신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면면히 계승되고 전승되어야 할 고귀한 가치다. 굴곡이 많은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 사회는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았던 전 세대의 인물들을 넉넉히 만나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삶을 기록하여 다음 세대로 전승하는 일이 중요하다. 모든 세대는 전 세대로부터 정신적으로 중요한 무언가를 물려받아 그것을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 다음 세대로 넘겨줄 책임이 있다. 존경할 만한 삶, 닮고 싶은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 세대의 이야기가 많이 있어야 젊은이들 또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힘을 얻는다. ---pp.18-19
1부 풍요로운 창조―지적 탐구와 자기만의 글쓰기 세계인 박이문 보편의 추구 박이문과 같은 세대에 속하는 조가경, 승계호, 김재권, 이광세 등 한국 출신 철학자들이 영어로 쓴 저서를 통해 미국 철학계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그들이 한국어로 사유하고 한글로 쓰는 능력을 상실한 것과 달리 박이문은 영어와 프랑스어로 쓰면서도 한글로 자신의 사유를 표현하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일찍이 1950년대 후반부터 한글로 문학평론과 시를 쓰기 시작한 이후 프랑스어와 영어로 논문을 쓰면서도 줄곧 한국어로 사유하고 글을 쓰는 능력을 유지했다. ---p.41
박이문은 한국어 저서를 통해 한국 ‘자생철학’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의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었다. 그의 철학은 박이문 개인의 철학이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철학의 자생성과 독창성을 위한 디딤돌이자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학계의 지적 과제는 서구 학문의 추종에서 벗어나 우리 나름의 학문을 만들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그 보편성을 인정받는 데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미 1960년대부터 문학과 철학, 서양철학과 아시아사상을 넘나들며 자기만의 학문을 추구해온 세계인 박이문의 삶과 학문세계를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p.42
철학자 박이문 궁극의 인식 세계의 절대적 확실성에 도달하려는 꿈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일지라도 철학자는 끊임없이 사회, 인류, 우주의 궁극적 존재가치를 탐구한다. 박이문은 이카로스와 시시포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의 철학적 탐구를 계속한다. … 박이 문은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철학적 사유를 계속했다. 확실한 답을 찾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pp.50-51
“지난 10여 년 동안 나의 주요한 철학적 관심 중 하나는 니체에 서 시작하여 푸코와 데리다를 거치면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같이 흔들리고 있는 이성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옹호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이성을 판단의 절대적 잣대라고 믿지 않고 무조건 의지할 수 있는 빛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성은 역시 사유의 잣대이며, 이성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빛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pp.64-65
박이문의 둥지의 철학은 그가 평생 동안 동서양을 섭렵하고 또 문학과 사상과 예술을 넘나들며 모으고 가꿔온 다양한 언어의 재료들로 엮은 편안하고 아름다운 둥지다. 이승종이 말하듯이 “둥지의 철학은 박이문 철학의 모든 것이 응축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혼란과 격동 의 시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온 노老철학자가 자신의 평생을 다 바쳐 빚어낸 위대한 사유의 심포니”다. 그의 평생의 사고와 글쓰기 작업은 영혼이 거처할 ‘둥지’를 짓는 일이었으며 지금도 그 둥지를 계속 더 아름답고 편안하고 견고하게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