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뿌리는 대지의 과거로 뻗는다. 새로운 단어처럼 건방진 새 잎들은 초록이라는 순수한 기쁨으로 밝게 빛난다. ‘빛’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태양의 활기찬 동음이의의 말장난 속에서 엽록소는 햇빛으로 초록색 실을 잣는다. 은유는 언어가 경계를 뛰어넘고 넘나드는 가장 야생적이며 생기 넘치는 자유로운 곳이다. 따라서 아마존의 언어들이 식물로 뒤얽힌 숲처럼 은유로 엉겨붙고 난해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울타리가 쳐지지 않은 야생의 자연, 아마존은 의미가 의미 속에 엉키고 단어들이 결합해 쌍을 이루고 무리를 짓는, 무한한 암시의 장소다. 바람은 나뭇잎의 의미를 비틀고, 비는 하늘에서 숲으로 다시 숲에서 하늘로 까불고 뛰놀며 언어의 순수한 비옥함을 드러낸다. 밝혀진 의미의 이면에 은유적 의미가 포개지듯, 얼굴 뒤에 정신이 존재하듯, 선명한 초록빛에 암시를 담은 야생 언어는 명백함의 저편에서 노래한다.---「1장 야생의 땅 ― 숲」중에서
겨울철, 바다는 마치 잠재의식이 그 타는 고통을 갈무리해 얼음 위에 내려놓은 듯 꽁꽁 얼어붙는다. 겨울의 첫 번째 무거움은 마치 뒤죽박죽되고 혼란에 빠진 정신과도 같다. 바닷물은 얼음같이 차가운 침묵으로 휘저어진 언어와 같고, 그나마 어쩌다 비틀거리며 이는 파도는 해안에 부딪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결국 무시당하고 점점 쇠약해진다. 겨울은 사실상 귀머거리다. 정신은 곰발바닥 같은 빙판으로 단단해지고, 각각의 빙판은 삭제된 문단과 눈에 보이는 침묵, 단어가 있어야 할 자리의 빈 공간이다. 바다의 얼굴은 점점 움직임과 표정이 적어지고, 정신은 얼어붙는다. 찰싹찰싹 치는 파도의 수다와 해안을 내려치던 바다의 소란한 외침은 사라지고 어둠 속, 고독한 침묵 속에서 여름의 정신은 침묵에 잠긴다. 그래서 이따금씩 해빙이 깨질 때, 정신의 단층을 따라 어마어마한 고통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억압되었던 기억이 맹렬히 폭발하면서 배를 구부리고 쇄빙선을 부순다. 메아리치는 아우성에 실린 분노는 소름끼치게 무섭고 충격적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어붙고 오랫동안 침묵했던 상처받은 마음은 그 분노를 터뜨리며 산산이 부서져 야만적으로 변할 수 있다.---「2장 야생의 얼음 ― 빙하」중에서
최초의 탄생과 궁극의 죽음이 여기서 만난다. 유인원이든 해초든 모든 생명은 먼저 바다에서 나와, 끝없는 변형을 거쳐 시계꽃과 당신이 되었다. 그리고 한때 살았던 모든 생명의 잔해는 끝없는 변형을 거쳐 흙과 강물, 많은 동물들의 몸을 통해 바다로 다시 돌아간다. 생명력을 거의 다 소진한 채 바다로 씻겨내려간 이 덧없는 조각들과 골수가 다 빠져나가 한 줌 먼지가 되어버린 뼈는 바다의 겨울에 바다의 눈이 되어 해저에 쌓인다. … 바다의 마법은 바로 바다로부터 생명이 발생한다는 점에 있다. 시간의 바로 그 시작에 죽음과 생명, 그 상극의 연인이 하나의 바다 침대에서 구르며 벌이는 그 가장 심오한 교미에서 모든 생명이 시작된다. 겨울의 차가운 바닷물은 가라앉고 침대의 따뜻한 물은 위로 솟으면서, 그 침대로부터 탄생한 생명은 너울너울 날아 다시 올라간다. 과거에 죽었던 것의 아주 작은 조각은 솟아오르는 따뜻한 바닷물에 살짝 섞여 올라가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바다는 새로운 생명의 계절을 맞아 다시 피어난다.---「3장 야생의 물 ― 바다」중에서
사막의 모래가 영원성을 암시한다지만 모래언덕들을 교차하는 흔적은 현재성, 즉 지금을 암시한다. 모래의 수학은 무한성과 절대성을 암시하는 반면, 그 위의 흔적은 이야기의 필요성과 절대성의 복잡함, 진정으로 무한한 것은 오직 무한히 복잡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 지나간 흔적은 길을 가는 그 주체의 정신 상태, 즉 호기심이나 겁, 욕망, 배고픔 또는 활기를 보여준다. 모든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있고, 각각의 동물의 이야기는 다른 모든 동물의 이야기와 엮여 있다. 사실 사막에 있다는 것은 행과 사건, 인용문과 이야기로 이루어진 텍스트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바람은 그 텍스트를 곧 백지로 만들고 각 장마다 쓰여진 연필 자국을 지울 것이며, 그 공간에 풍뎅이와 새 같은 작은 동물 작가들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4장 야생의 불 ― 사막」중에서
자유를 나타내는 단어들은 발음되는 순간 공기를 울리는 힘이 있다. 자연의 모든 원소 중 자유와 가장 관련이 깊은 것은 공기다. 공기의 풍경airscape은 곧 탈출escape을 의미하고 ‘바람처럼 자유롭다’.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노르웨이 단어 friluftsliv(그대로 풀이하면 ‘자유로운-공기-생명’)는 덫으로 잡을 수 없는 공기와 그물로 낚을 수 없는 하늘, ? 막히지 않은 충만한 생명의 의미를 함축한다. 산은 모든 지형 중에서 가장 자유로워 보인다. 킬리만자로의 한 봉우리의 이름은 자유를 의미하는 우후루Uhuru인데, 이것은 모든 산에 들어맞는 이름이다. 산은 공기나 바람, 새들의 비행, 정신의 날개(생각은 활공하는 특성이 있다)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것과 관련이 있으며, 인간의 정신은 그 비행을 비추는 거울로서 산을 필요로 한다. 요제프 보이스는 산을 “내면의 심리학으로 봤을 때 … 의식의 고원을 표상한다”고 말했다.---「5장 야생의 공기 ― 자유」중에서
생명의 핵에는 가벼움이 있고, 가벼움의 힘은 중력의 힘보다 더 강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위를 향하기 마련이고, 결국 올라가는 것은 떨어지는 것보다 더 쉽다. 올라가는 힘은 이미 우리 안에, 태양을 향해 뻗는 콩의 덩굴손 속에, 바닷속에, 생명 그 자체에 존재한다. 이 가벼움은 천박하지 않다. 오히려 가벼움은 더 중요하고 무거움보다 더 심오하다. 농담은 장례식의 밤샘보다 더 중요하고, 희극은 비극보다 더 진지하고 진실하다. 현대의 학자연하는 속 좁은 사람들은 입술을 지그시 씹으며, 중요한 것은 반드시 심각하게 지루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무언가가 재미있으면 심오할 수 없다고 말한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벼움은 웃음거리 이상으로 훨씬 더 중요하다. 가장 현명한 사고는 무거움이 아닌 가벼움에서 나온다. 생명의 가벼운 고양은 죽음의 칙칙한 엄숙함보다 더 강하다. 이 사실, 즉 피부 밑의 해골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는 점이 바로 유쾌한 희극의 핵심이다. 비극은 희극을 견뎌내지 못하고, 실잠자리는 오필리아의 눈구멍에 알을 낳을 것이다. 한쪽에는 죽음과 황폐해진 처녀가, 다른 한쪽에는 처녀의 생명과 다산의 야생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