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불안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 써야 할 시간과 돈도 저축한다. 하고 싶은 일은 나중으로 미루는 게 인생이라고 가르친다. 고등학생이 된 제규는 스스로 궤도이탈자가 되었다. 본 적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해야 할’ 학교공부 대신에 ‘하고 싶은’ 요리를 했다. 뭔가가 되지 않았어도, 그 과정은 근사했다. 밥 짓는 소년을 글로 쓴 이유다.
---「프롤로그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의 소년은 두려움이 없다]」중에서
나는 제규에게 박찬일 셰프의 칼럼을 읽게 했다. ‘요리사의 평균 급여는 바닥. 노동시간은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보다 더 길고, 신분 보장도 잘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제규도 ‘요리사의 근속 연수가 3년 미만인 이유가 창업한 식당의 생존기간이 대개 3년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중략)
“엄마, 난 대학 안 가요. 학자금 대출받아서 처참하게 살 것 같애.”
“너 학원 안 보내고 모아놓은 돈 있어. 등록금 내라고 줄 거야.”
“싫어요. 학교 공부 자체가 나랑 안 맞아. 내가 왜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라는 기사를 관심 있게 읽은 줄 아세요? 남 얘기가 아니니까. 내가 그렇게 살 수도 있잖아요.”
순간, 코끝이 아렸다. 오찬호의 책『진격의 대학교』에는 ‘대학생=대기업 입사 희망자’라는 공식이 나온다. 남편과 나는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우리, 회사 안 다니길 잘했다. 애들도 보내지 말자”고 다짐하는 바보들. 이런 부모를 둔 제규는 테이블 서너 개짜리 식당을 하는 게 꿈이다. 의젓하게 “돈 욕심 없어요”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잘 때는 이불 덮어달라고, 뽀뽀해달라고 한다.
제규는 더 이상 “자퇴할래요”라고 조르지 않는다. ‘밥 걱정의 노예’인 남편은 “아들이 밥 하니까 좋네”라면서 며칠간 출장을 갔다. 우리 집의 진짜 주방장 노릇을 하게 된 제규는 학교에 갔다 와서 밥상을 차렸다. 먹고 치우고, 좋아하는 셰프의 동영상을 찾아보다가 학교에서 내준 과학 숙제 걱정을 했다. 나는『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
만둔대』의 한 구절을 읽어줬다.
“이 교실 외에도 지금 칠판 앞 수백 개의 등짝에 수백 종류의 미래가 걸려 있고, 그렇기에 수백 종류의 길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고등학교란 곳은 왠지 낙원 같다.”
“엄마, 그거 진짜 아니에요. 고등학교가 낙원 같다고요?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냥 참고 다니는 거라고요.”
반박 불가! 제규 말은 책 속의 글보다 더 현실적이었다. 인내하면서, 정해진 몇 가지의 길로만 가는 게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다. 수백 종류의 길을 탐구하는 건 쓸모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제규가 다른 길도 가봤으면 좋겠다. 모든 감각이 활짝 열려 있는 또래 친구들과 같이 많이 웃고, 때로 실망도 하면서. 그러려면 학교는 계속 다니는 게 좋겠다.
---「[이제 막 고등학생, 야자 대신 저녁밥 한다]」중에서
아, 정곡을 찔렸다. 내가 제규를 잘 모르고 있다고 확실하게 알게 된 때는 꽃차남을 낳고 나서다. 열한 살에 동생을 본 제규는 “엄마! 아빠랑 나랑 셋이서만 살자”며 서럽게 울었다. 나는 아이의 상실감을 감싸주지 못했다. 그 상태로 제규는 사춘기를 맞았다. 방문을 쾅쾅 닫고, 가끔은 괴성도 질렀다. 나도 아기 키우는 거 힘들고 밥벌이도 고되다고 같이 짜증을 냈다.
시간은 우리 사이를 천천히 회복시켜주고 있다. 불도 제대로 안 켜진 사춘기의 터널을 통과한 제규의 표정은 순해졌다. 부러질 것처럼 딱딱하던 말투도 다정해졌다. 자기가 한 음식을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때마다, 제규는 뭐라도 크게 이룬 사람처럼 흐뭇해한다. 우리는 그저 마주앉아 밥을 먹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인데, 서로를 알아가는 느낌이 든다.
---「[“돈가스 모르는 사람은 나를 모르는 거예요.”]」중에서
아버지는 우리한테 음식만 남겨준 게 아니다. 아내를 아끼고, 새끼들을 예뻐하고, 이웃과 유쾌하게 지낸 당신의 유전자도 물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하고 줄곧 남편이 해주는 밥을 먹고 산다. 고등학생 아들은 스스로 아침밥을 해먹고 학교에 간다. 저녁에는 식구들 밥을 차린다. 제 할아버지처럼 친구들을 불러와 밥을 해 먹인다.
(중략)
울컥울컥 솟던 눈물이 바로 마르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같이 근사한 사람을『조선 셰프 서유구』에서 만났다. 서유구는『임원경제지』를 쓴 사람. 우리 아버지 강호병님보다 170여 년 앞서 태어났다. 그러나 명문가 출신 서유구도, 그의 할아버지도 직접 음식을 했다. 그의 할아버지가 임종을 앞뒀을 때, 서유구는 이렇게 썼다.
“좋은 집안이거나 먹고살 만한 집안에는 반드시 인품이 좋거나 학식이 뛰어나거나 돈을 버는 재주를 가진 인내심과 희생정신이 강한 남다른 할아버지가 계신다. 할아버지의 덕과 수고로 생기는 혜택은 아들인 아비보다 손자가 더 많이 받게 되는데 우리 서씨 집안도 다르지 않다.”
---「[잘 먹는 집안에는 좋은 할아버지가 있다]」중에서
날마다 ‘밥이나’ 하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재미있어 보였다. 대학입시라는 궤도에 진입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가겠다는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야자 대신 저녁밥 하는 고딩 아들’이라는 기록을 시작했다. 제규가 “밥 하기 싫어졌어”라고 말 하면, 언제든지 그만둘 생각이었다.
글을 읽은 사람들이 진심을 담아서 말을 걸어왔다. 어떤 이는 “요리하려면 최소 전문대는 다녀야 하고, 영어도 꼭 공부해야 한다”라는 당부를 했다. “대한민국에 실존하는 가족이 맞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한 고등학생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낸 제규가 부럽다”고도 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얘기해줬다”는 교사도 있었다.
제규가 가는 길에는 크고 잘생긴 나무 그늘이 없다. 목을 축일 물도 스스로 챙겨서 다녀야 한다. 나는 옹달샘이라도 되어주고 싶다.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대학입시 말고도 다양한 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때에는, 학교공부 바깥에서 꿈을 키우던 제규 이야기는 시시해질 거다. 나는 엄마니까 낙관한다.
---「에필로그 [혼자 길 떠나는 소년은 특별하지 않아도 멋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