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성(金庚成:본명)은 1930년 1월 22일(음력) 북제주군 구좌읍 월정리 부친 김태용과 모친 강용민 사이에서 1남 11녀 중 일곱번째로 태어났다.
김경성의 조부와 부친은 주주머리(마을 선주들의 우두머리)였는데 <멜 거리는 소리>의 앞소리를 잘했다. 그래서 김경성은 10여세부터 조부와 부친의 소리를 흥미있게 듣고 따라서 흥얼거리다가 자연히 이 소리를 익히게 되었다.
김경성의 부친은 뱃일과 농업, 모친은 농사와 잠녀일을 했다. 김경성의 부친 김태용 위로는 김태옥, 김태원과 같은 형들이 있었고 아래로는 남동생 하나, 여동생 셋이 있었다 한다. 김경성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의 큰아버지인 김태옥과 김태원은 40여년간 이장일을 했으며 소리는 잘 못했다 한다. 김경성의 작은아버지와 고모들은 일찍 세상을 떠나 성명 조차 모른다고 한다.
김경성의 조모와 모친은 김경성이 아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리고 외가 식구들은 모친 작고 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한다.
김경성의 형제들 역시 모두 소리를 잘하지만 이걸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는다. 특히 김경성의 둘째 여동생 김춘정이 제주민요를 잘 부른다. 김춘정은 김경성보다 6∼7세 연하인데 현재 동김녕리에서 살고 있다.
김경성 세대에서 일가친척 중 제주민요를 가장 잘 부른 이는 김경성의 사촌언니 김창순(김태원의 딸)이라 한다. 김창순은 김경성보다 13∼14세 연상인데 1998년에 작고했다.
멜(멸치) 거리러 나갈 때는 주주머리와 선인들이 목욕하고 돼지 잡고 “멜 잘 들게 해줍세” 하며 소망을 비는 고사를 지낸 뒤 출항을 하고 배가 꽉 차서 돌아오게 되면 만선기를 배에 꽂고 귀항했다 한다. 그리고 잡아온 멜을 갈라서 선인들에게 나눠주는 일은 주주머리의 몫이었다 한다. 옛부터 제주 뱃사람들에게는 변말(은어)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다.
김경성은 1986년 4월 10일 제주도 지정 무형문화재 <멸치 후리는 소리>(멜 거리는 소리)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김경성의 문화재 후보는 김순녀이다.
김경성은 21세에 한우봉과 혼인하여 슬하에 2남 5녀를 두었는데 이 가운데 큰딸 한성복, 막내딸 한희복, 외손자 강광수(한성복의 아들)가 김경성의 소리를 배워 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경성의 남편 한우봉은 1928년생으로 동김녕리 토박이다. 김경성은 밖에서 문화재로 활동하는 것을 남편이 많이 이해해 주어 이 일로 인한 어려움은 별로 없다 한다. 김경성은 동김녕리로 시집온 이후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데 현주소는 북제주군 구좌읍 동김녕리 1667-8(창훈상회)이라 한다. 김경성은 젊어서 농사와 해녀일을 했다.
김경성의 증언에 의하면 제주도 지정 무형문화재 정순덕(동김녕리)은 1998년에 작고했는데 정순덕의 해녀소리는 행원 사람들이 와서 전수해 갔다고 한다.
김경성의 증언에 의하면 요즘 젊은 심방(무당)들은 말명, 절차 등을 배워서 굿을 하지만 예전에는 심방이라 하면 신기가 몸에 딱 붙어서 착착 알아가지고 절로 굿을 했으며 굿을 배우려 해도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한다.
옛날에 심방은 굿판에선 왕이지만 일상에서는 무척 천대받았다 한다. 그래도 심방이 하인보다는 지위가 높았다 한다. 예전에는 제주도에서 심방이라면 천하게들 생각했으나 지금은 심방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한다.
동김녕리에서 잠녀굿(하루짜리)을 했던 큰심방으로는 이달춘, 한가멩이 유명했다 한다. 이달춘은 동김녕리 토박이로 멋진 할아버지였다 한다. 이달춘은 이목구비가 대통령 감이었으며 몸 맵씨도 좋고 의젓했으며 춤 잘추고 울리기도 잘했다 한다. 이달춘은 김경성보다 30여세 연상인데 1960년경에 세상을 떠났다 한다. 이달춘 작고 후엔 그 부인 김모씨(?)가, 김모씨 이후엔 한가멩이 이달춘의 동김녕리 굿을 이어받았다 한다. 이달춘의 손자가 현재 동김녕리에서 살고 있다 한다.
한가멩(女) 역시 동김녕리 토박이며 지금 생존시 90여세인데 1980년경에 작고했다 한다. 한가멩의 모친, 그리고 한가멩의 남편 강대경(행원 사람)도 심방이었다 한다. 한가멩의 자손은 거의 모두 심방이 아닌데 큰아들은 현재 교사이고 사위 하나가 지금 심방으로 활동 중이라 한다.
한가멩 이후론 문충성, 문순실 모녀가 동김녕리의 굿을 담당했는데 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라 한다. 문충성, 문순실 심방은 김경성의 집 근처에서 살고 있다 한다. 김경성은 일제 때 서귀포 심방 김수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한다.
김경성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월정에는 예전에 강모씨(男), 임모씨(女)가 이름난 심방이었다 한다. 이들은 모두 월정 토박이며 김경성의 나이 10대 때 60세를 넘긴 노인들이었다 한다. 이들은 월정에서 마을굿, 환자굿 등을 담당했었다 한다. 이 가운데 임모씨는 큰심방이었는데 1960년경에 작고했다 한다. 강모씨는 임모씨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으며 1940년경에 작고했다 한다. 강모씨의 조부, 조모, 아들 모두 심방이었다 한다.
현재 김경성이 부를 수 있는 민요는 <멸치 후리는 소리>, <영주십경>, <이야홍타령>, <망건 짜는 소리>, <마당질 소리>, <김 매는 소리>, <우럭 삼촌>, <서우제소리>, <해녀소리>, <상여소리>, <오돌또기>, <창부타령>, <방아 찧는 소리>, <아기 흥그는 소리>, <울도 담도 없는 시집살이>, <밭 밟는 소리>(말 모는 소리), <맷돌 돌리는 소리> 등이라 한다.(1999.2.4.18:30∼20:20.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동김녕리 1667-8 김경성 자택/2003.12.14.10:00∼14:50. 서울 훈스튜디오에서 김경성 증언)
김경성은 곱고 맑은 성음을 지니고 있다. 고음도 물론 출중하나 어쩌면 고음보다 더 어렵다 할 수 있는 저음의 창법이 특히 탁월하다. 또한 기억력이 좋고 목구성과 근력이 뛰어나 오래전 가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한 노래를 가지고도 수 시간을 이어 부를 수 있는 재능과 긴 호흡을 갖고 있다.
동김녕리 일대에선 현재 가장 첫 손 꼽히는 명창으로 평가되며 제주도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이분 만한 명창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제 물허벅 반주도 이분 만큼 능숙하게 두드릴 수 있는 제주도인이 극히 드물다.
그러한 제주민요의 대가 김경성 할머니께서 1986년 제주도 지정 무형문화재 <멸치 후리는 소리>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은 후 무려 17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분의 첫 독집 ‘김경성의 국악세계’ 음반이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국가나 기업, 어떠한 단체에 의해서가 아닌 이렇듯 한국고음반연구회 정창관 회원님 개인의 노력으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지극히 다행스럽게, 기쁘게 생각하는 바이다.
--- 글/노재명(한국고음반연구회원·국악음반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