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세계은행 정책연구부 경제자문역과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을 거쳐 서강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한국국제통상학회 수석부회장, 한국경제학회 이사,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자 : 이지훈
조선일보 경제부장과 [위클리비즈] 편집장을 거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혼·창·통』『현대카드 이야기』『단(單)』 등을 펴낸 베스트셀러 저자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그리고 한양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우병 사태는 우발적으로 나타난 일과성 해프닝이 아니었다. 몇 가지의 구조적 불균형 또는 비대칭이 집약돼 나타난 사건이며, 시대 상황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글은 광우병 촛불집회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 p.12~13
일반인들은 위험에 대해 생각할 때 정신적 지름길, 즉 휴리스틱(heuristic)을 사용한다. 위험을 머릿속에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경우 그 사건의 발생 가능성이 합리적 예측보다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른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다. 사람들이 광우병이나 비행기 폭발 사고처럼 크게 이슈화된 사건은 발생 확률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건(비만이나 자동차 사고)의 발생 확률은 과소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9
언론의 준거 체계는 진리/허위의 코드보다 정보/비정보의 코드를 따른다. [PD수첩]을 비롯한 대중매체는 과학에서와 달리 정보가 진리로 주장될 때까지 확인하거나 허위를 배제하려고 하는 철저함보다 특정 정보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을 환기시키는 데 또는 독자나 시청자의 반응에 관심을 기울인다. (…) 반면 인간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해 가장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집단인 학계의 준거 체계는 철저히 진리/허위의 코드를 따른다. 그런데 광우병 촛불집회 발생 당시 인간 광우병 발병 요인에 대한 연구가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계는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 p.20
광우병 촛불집회는 시위의 시작과 과정, 반대와 찬성의 양상 등에 있어서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세계적으로 전례가 드문 사건으로 판단된다. --- p.45
소비자의 침묵은 한국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 정부는 이해집단 간 이익의 균형을 취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수입 대체 산업과 노조들의 이익은 다국적 기업이나 수출 업체들의 이익과 충돌하기 쉽다. 소비자 후생의 증가는 각국 정부가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원인이자 그 결과이기도 하지만, 실제 무역자유화 정책을 도입할 때는 정치적인 이유로 소비자들이 무시되는 경우도 많다. 생산자에 비해 제대로 조직화되지도 않았고 정치적으로도 무력한 소비자들은 특정한 정책의 도입 또는 폐기에 대해 뚜렷한 선호관계를 투표로 드러내지 않으며, 따라서 국회의원이나 정부도 소비자의 후생 변화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 p.61
대의민주주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국민은 광장에서 그 의사를 표시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광우병 파동을 ‘대안적 정치 체제의 등장’으로 해석하는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다. 시민들의 비판적 의견 표출과 이를 관철하기 위한 직접민주주의 체제가 사회 전면에 떠오른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일방적인 국회의원에게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고 사안에 따라 정파와 지역의 이익을 초월하는 모습을 국회의원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입법부의 전문성 및 대표성 강화는 행정부의 견제와 건설적인 대안 제시를 위해서도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사안임을 광우병 파동은 우리 모두에게 깨닫게 했다. --- p.121
한국 사회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사회의 불균형을 균형으로 재빨리 되돌릴 수 있는 건강한 복원력을 회복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먼저 불균형을 잉태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우리 사회 비대칭성에 대한 심각한 자성과 고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