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정승화 총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정승화 총장은 김계원의 체포에 동의하지 않는가. 김계원은 바로 시해 현장에 동석했던 사람이 아닌가. 설령 그가 대통령의 시해 범행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자리에 있었다면 자신이 방패막으로 나섰어야 될 게 아닌가. ……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 덩어리들로부터 헤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10·26 그날 궁정동 '최후의 만찬장'에 참석했던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뿐만 아니라 현장 근처에 있었던 정승화 총장에게까지 의혹을 갖고 있었다. 결국 그 의혹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된 12·12 쿠데타의 빌미가 됐으며,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단초가 됐다.
--- 본문 중에서
1979년 12월 12일 오후 6시경 보안사 사령관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휘하의 허화평 대령, 이학봉 중령과 함께 잠시 후에 전개될 총장 연행 작전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행동 개시는 6시 30분에 한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삼청동 총리 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재가 받을 보고를 한다. …… 같은 시간, 경복궁 수경사 30단장실에는 거사 참여 장성들이 집결하고, 연희동 요정에는 작전에 장애 요인이 될 특전사령관, 수경사령관, 헌병감 등을 초대한다. …… 정승화 총장의 체포대는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대령과 육본 범수단장 우경윤 대령을 중심으로……. 작전지시를 내리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표정은 쇳덩어리같이 굳어 있었다. 한국 현대사를 뒤바꿀 운명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나쁜 놈들! 정치군인으로 안하무인격으로 놀아나더니 이젠 모반까지 해."
분노를 혼자 다스리기에는 사태가 너무 심각했다. 잠시 이 중대한 일을 어떻게 진압, 수습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겼던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30경비단장실로 전화를 걸었다.
"나, 사령관이다. 단장 바꿔."
잠시 후 상대방에서 수화기를 들었는데 장세동 30단장이 아니라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중장이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힌 뒤 입을 열었다.
"선배님. 지금 전군에 비상이 걸려 모든 장병들이 외출 외박이 금지됐는데, 남의 부대에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무슨 작당을 하고 있는 겁니까? 어떻게 총장님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선배님, 저보다 그쪽에 계신 분들이 총장님과 더 가깝지 않습니까. 이 비상시국에 계엄사령관인 총장님을 납치해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빨리 총장님을 원상복귀 시키십시오. 이번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선배님, 거기서 나와야 해요. 사령관인 저도 해가 진 후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부대에 가질 않습니다."
"어이, 장 장군!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이리로 와. 이리 와서 우리하고 얘기 좀 하자구."
유학성 차관보의 얘기를 듣는 순간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참았던 분노가 꾸역꾸역 치밀어 올랐다. 그의 입에서는 욕설이 마구 튀어 나왔다.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너희 놈들 거기 그대로 있어. 내 전차를 몰고 가서 싹 깔아 죽여 버릴 테니까!"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