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캐서린 몰랜드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녀가 여주인공이 될 운명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리라. 타고난 신분이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인물들, 그녀 자신의 성격과 기질까지 모든 게 하나같이 소설 속 여주인공과는 정반대였다. [……] 그녀의 어머니는 현실적이고 평범한 상식을 지닌 여인으로 명랑했으며 무엇보다 튼튼한 체질이었다. 캐서린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들 셋을 낳았는데, 흔히 예상하듯이 캐서린을 낳다가 죽기는커녕 멀쩡히 살아서 여섯 명을 더 낳았고, 여전히 자식들이 자라는 걸 지켜보며 남다른 건강을 과시하고 있었다. 자식이 열 명이나 되고 모두 사지가 멀쩡하다면 훌륭한 가정이란 소리를 듣기 마련이지만, 몰랜드 가족은 딱히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었다. 대체로 인물들이 별로였기 때문이었다. 캐서린도 여러 해 동안 다른 형제들과 매한가지였다. 볼품없이 비쩍 마른 몸매에 창백하고 칙칙한 피부, 뻣뻣한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여자 아이로서는 지나치게 선이 굵은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다.--- p.13~14
춤과 결혼 모두, 남자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반면, 여자는 오직 거절할 권리만 있습니다. [……] 결혼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부양할 의무가 있지요. 여자는 남자에게 즐거운 가정을 만들어주고요. 남자는 생계를 유지하고 여자는 미소를 지어야 하죠. 하지만 춤을 출 때는 두 사람의 의무가 완전히 반대입니다. 남자들에게는 다정함과 고분고분함이 기대되고, 여자들은 부채와 라벤더 향수를 장만하죠. --- p.99~100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기뻐요. 이제부터 《우돌포》를 좋아하는 걸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로 전에는 젊은 남자들이 소설을 굉장히 경멸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것 참 놀라운 일이네요. 만약 남자들이 정말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놀랄 만한 일인데요. 남자들도 거의 여자들만큼 소설책을 많이 읽으니까요. 저는 수백 권쯤 읽었습니다. 그러니 소설 속의 ‘줄리아’들이나 ‘루이자’들에 관해서 저랑 지식을 겨뤄볼 꿈도 꾸지 마십시오. 만약 우리가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이거 읽어봤어요? 저거 읽어봤어요’ 하는 끝없는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저는 당장 당신을 따돌리고 저만큼 앞서 갈 겁니다. [……] 제가 당신보다 몇 년이나 빨리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 생각해봐요. 당신이 집에서 교본을 공부하는 착한 꼬마 숙녀일 때, 저는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