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도 좋고 부유한, 이른바 잘사는 나라에 사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행복할까?’라며 부러워한다. 그 나라도 사는 곳에 따라 환경이 천차만별이고, 반드시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는 데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천국에 머물러도 지옥처럼 괴로울 수 있고, 지옥 같은 곳이라도 천국처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를 않는다. 설사 평상시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도 막상 무엇인가를 판단해야 할 때가 되면 평소의 생각이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특정한 면만을 보고 판단을 내리게 하는 주범은 ‘초점 두기의 착각(Focusing Illusion)’이라는 심리 현상이다.
카네만은 한 실험에서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의 참가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는 “요즘 얼마나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이었고, 둘째는 “지난달에는 데이트를 몇 번이나 했습니까?”라는 내용이었다.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각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다시 말해 데이트를 많이 한 사람이나 적게 한 사람이나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그룹의 참가자들에게는 질문의 순서를 바꾸어 보았다. “지난달에는 데이트를 몇 번이나 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먼저 했다. 그런데 결과는 서로 달랐다. 데이트를 많이 했다고 대답한 사람들일수록 이후의 질문에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즉 데이트를 많이 했다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 다음 질문에 영향을 미쳐 저절로 행복감을 높인 것이다. 이처럼 한 가지 측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현상을 ‘초점 두기의 착각’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의 심리는 이상하게도 자기에게 부족한 면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자기가 갖지 못한 면이 바람직한 것일 때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바람직하지 않을 때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만약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누군가 가졌을 때는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긴다. 반면 그것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는 상대에 대한 우월과 무시로 나타난다.
초점 두기 착각에 빠지면 장점들은 완벽하게 무시된다. 익숙한 것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나쁜 태도 때문이다. 이런 태도 때문에 자기에게 없는 것에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해 쓸데없이 부러움과 시기 질투를 느끼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이 행복을 갉아먹는다. ---44p.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어디에도 없다'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인간관계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관계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실 인간관계가 전반적으로 나쁜 사람은 거의 없다. 대개는 특정한 한두 사람과의 관계로 골치를 앓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관계는 나무랄 데가 없고, 특히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좋다. 이런 사람들은 남에게 배려도 잘하고, 남의 마음을 잘 읽고 대응한다. 성격에도 특별히 모난 구석이 없고 사근사근해 인간관계가 원만하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이런 식이다 보니 인간관계로 고민해야 할 일은 없을 법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다.
이런 사람들이 인간관계 때문에 고통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배려만 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배려가 무슨 전가의 보도인 냥 생각하며 먼저 배려만 하면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스스로 마음을 열 것으로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이유 없이 싫기만 한, 궁합이 전혀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배려가 능사일까? 배려만 하면 관계는 저절로 풀려갈까? 단언컨대 대답은 “No”다.
배려에는 한계가 있다. 배려는 서로 주고받아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이쪽이 배려한다는 것을 상대방도 알아주면서 배려로 되돌려 줄 때 배려가 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쪽은 배려한답시고 양보를 했는데 상대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면 보통 사람인 이상 누구나 기분이 상한다. 물론 한두 번 정도는 먼저 베푼 배려가 무시당하더라도 그 정도야 참을 수 있고, 또 참기도 한다. 하지만 무한정 어느 한 쪽의 배려가 무시당한다면, 또 상대방이 오히려 배려를 이용하는 기색이 보인다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참을 수 있을까? 당사자가 신부님, 목사님, 스님이 아닌 이상 참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계가 있다고 해서 관계를 당장 끊는 것은 아니겠지만, 평소와 같이 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배려가 사람을 잡는다. 물론 배려를 통해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갈등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배려를 서로 주고받을 줄 아는 사람들끼리의 이야기다.
---111p. '배려는 주고받는 것, 일방적인 배려는 병이 된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