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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를 바꾼 정복자와 독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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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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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0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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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파일/용량 PDF(DRM) | 38.64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431쪽?
ISBN13 9791186614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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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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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와 칭기즈칸 이 두 영웅은 모두 승리의 정점에서 죽었으며 그들의 업적과 명성은 생생히 살아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두 사람이 이룬 업적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사후에 일어난 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자마자 그의 휘하 장군들은 곧 권력투쟁에 돌입하여 거대한 제국을 분할하여 챙겼다. 그들에게 죽은 알렉산드로스의 명예를 지키는 일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알렉산드로스가 그의 제국을 물려주려고 했던 어린 아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망쳤으나 결국 살해되고 말았다.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불같은 인생을 살았으나 그의 행운이 사후에까지 지속되지는 않았다. 한편 칭기즈칸은 어떠한가? 칭기즈칸의 자손들은 그의 유업을 지켰다. 특출난 점이 없었던 아들 세대가 금방 끝나버린 반면 뛰어난 인물이 많았던 손자 세대가 오래 지속되면서 몽골은 최전성기를 누렸다. 몽골인은 동서로 아르메니아에서 고려, 남북으로는 팔레스타인 에서 러시아에 이르는 유럽, 중동, 아시아의 거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가히 세계의 절반이 그들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칸의 유업을 이어받은 그의 자손들은 대를 이어 이 넓은 영토를 통치했다. 몽골의 정복사업을 보면 두 번 놀란다. 첫째는 칭기즈칸이 아들, 손자들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했다는 사실이다. 칭기즈칸은 역사상 그 어느 정복자보다 최소한 두 배 이상의 땅을 점령했으니 규모로서 그와 견줄 정복자는 없다. 몽골군은 동쪽으로는 태평양에서 서쪽으로는 지중해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땅을 지배했다. 전성기 몽골제국의 영토는 약 3천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중국, 인도, 서유럽, 아르헨티나, 뉴질랜드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넓었다. --- p.30∼31

알렉산드로스, 칭기즈칸, 히틀러, 스탈린, 사담 후세인 모두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역사를 만든 사람들이다. 이들에 관한 연구서는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연구를 해도 한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은 명확치 않다. 그것은 “이들만이 당 시대 역사를 이끌 수 있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빼어난 영웅임에 틀림없는 알렉산드로스와 칭기즈칸의 경우에는 비교적 답이 쉬워 보인다. 이들의 자질이나 업적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들 외에 이러한 정복의 역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나머지 독재자 세 사람의 경우에는 답이 쉽지 않다. 그들이 특이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그 자질이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맞아 떨어졌다는 점에서 공통점은 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그들이 당대에 미친 엄청난 소용돌이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특히 히틀러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운명의 여신이 역사를 필연적으로 정해놓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점이 너무 많다. 히틀러 연구로 유명한 이언 커쇼Ian Kershaw도 이와 같은 의문을 가졌다. 지성, 사교성, 융통성, 리더십은 물론 출신, 학벌, 공직 경험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결코 우월하다고 볼 수 없는 한 인물이 역사상 전무후무한 충격파를 던졌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자신이 나쁜 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가? 이에 대한 많은 전문가들의 답은 ‘노No’이다. 히틀러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옳은 일을 하고 있으며 유대인이라는 역병으로부터 독일을 구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 p.66∼67

알렉산드로스는 BC 330년 1월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 입성했다. 페르세폴리스는 이란 남부 시라즈에서 북동쪽으로 7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고대 도시이다. 지금까지 유연했던 알렉산드로스의 태도는 이 도시에 들어오면서 돌변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광범위한 약탈을 허용했으며 도시에 불을 질러 거의 폐허로 만들었다. 병사들은 알렉산드로스로부터 백지위임장을 받자 고삐 풀린 말처럼 약탈자로 변했다. 병사들은 남자들을 죽이고 부녀자를 납치하여 노예로 삼았다. 시민들의 재산은 모두 침략자의 차지가 되었다. 막대한 양의 금과 보석이 알렉산드로스의 금고로 들어왔다. 알렉산드로스는 12만 달란트(약 4천 톤)에 이르는 왕실의 어마어마한 보물을 모두 수사로 옮겼다고 한다. 플루타크는 말 1만 필과 낙타 5천 마리를 동원하여 겨우 이 보물을 옮길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바빌론과 수사에서 약탈을 금했던 알렉산드로스가 왜 페르세폴리스에서는 이를 전면 허용했을까? 수사를 방문했던 알렉산드로스는 희대의 정복자들 페르시아인의 적개심이 불타고 있음을 감지했다. 이를 그대로 놔두면 반란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았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인이 감히 그에게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어떤 특단의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취한 방법은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 p. 114∼115

잔인한 일은 성 밖에서도 벌어졌다. 칭기즈칸은 포로로 잡은 백성들을 노동력으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물건처럼 취급했다. 몽골군은 성을 공격할 때 백성들을 앞에 내세워 방패로 썼으며 죽은 시체는 해자를 메우거나 참호를 쌓는데 사용했다. 반면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아끼고 우대했다. 기술자는 칭기즈칸의 특별한 보호를 받으면서 전쟁에 필요한 각종 병기와 화약, 그리고 성을 공격하는데 필요한 공성탑과 투석기 등 각종 장비를 제작했다. 무자비한 전법이지만 백성을 노동력으로 쓰고 현지에서 필요한 사람을 징발해서 사용하는 전략은 주효했다. 칭기즈칸이 중군(中軍)을 이끌고 큰 전과를 올리고 있는 동안 그의 세 아들은 별도의 군대를 이끌고 태행산맥을 따라 하북성(허베이Hebei성)으로 남하했으며 황하에 부딪치자 서쪽으로 기수를 틀어 산서성 쪽으로 행군했다. 이들도 진군하는 동안 많은 성들을 점령한 것은 물론이다. 옆에서 보기에는 성을 점령하는 것이 이렇게 쉬운 일인가 할 정도로 몽골군은 가는 곳마다 백전백승을 거두었으나 사실 그들도 매우 힘든 행군을 하고 있었다. 기후 때문이었다. 시원한 초원에서 말을 타고 거침없이 달리던 몽골군에게 북중국의 덥고 습한 기후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많은 병사들이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 때문에 몽골이 1214년 금의 수도 종두(북경)를 점령하기까지 3년이나 걸렸다.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린 것이다. --- p.160∼161

칭기즈칸의 손자들은 아들보다 훨씬 유능했다. 몽케, 훌라구, 쿠빌라이, 아릭 보케 등 톨루이 가문의 쟁쟁한 손자들이 몽골제국의 축을 형성했다. 이렇게 된 이면에 어머니 소르칵타니의 헌신이 있었음은 물
론이다. 1251년 쿠릴타이에서 대칸으로 선출된 장남 몽케는 동생 훌라구와 쿠빌라이에게 각각 중동과 송의 정복을 명했다. 몽케는 진지하고 성실한 인품을 가졌다. 그는 백부 오고데이처럼 경박하지 않았고 사촌 구육처럼 무모하지도 않았다. 그는 황금 가족의 구성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알코올을 즐기지 않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의 대표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진지한 토론을 벌일 정도로 종교에 대해 개방적이었다. 몽케는 전임자 격인 구육이 상인들로부터 물건을 받고 마구잡이로 발행한 어음을 결제해 줄 정도로 국가의 신뢰를 중시했다. 한 번 신뢰가 깨어지면 몽골과의 상거래가 급격히 감소할 것을 감안한 사려 깊은 결정이었다. 경제에 관해 깊은 지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몽케는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를 잘 깨닫고 있었다. 지폐의 중요성을 깨닫고 1253년 화폐국을 창설하여 지 폐의 발행을 관장토록 했다. 몽케는 학문적인 배경은 없었으나 명석하여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잘 파악했다. 그의 정책은 합리적이고 시의 적절했다. 몽케 치하에서 몽골제국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 p.184∼185

1933년 1월 히틀러는 총리에 취임함으로써 12년간의 장기 집권을 시작한다. 이 어수선한 시기에 선동가는 빠르게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독일의 역사는 히틀러의 독무대가 되었으며 그가 나아가는 길이 제3제국이 걷는 길이었다. 히틀러가 쉽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비스마르크 시절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독일의 정치 문화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폐쇄적 민족주의, 제국주의, 권위주의, 인종주의, 반 마르크스주의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 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출범할 때부터 쌓여온 위기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국민들은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해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1933년과 1934년은 현대 독일의 역사에서 가장 불길한 시기이다. 길지 않은 이 시간 동안 희대의 선동가 히틀러는 손쉽게 독일제국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선거에 이기고 원내 다수당이 되자 이러한 행운이 히틀러에게 저절로 굴러 들어왔다. 히틀러 자신은 별로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힌덴부르크가 알아서 그를 총리에 임명했고 총리가 된 후에는 모든 것이 알아서 잘 굴러갔다. 1933년 1월 30일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만 하더라도 히틀러는 노골적으로 독재자 노릇을 할 처지에 있지는 않았다.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있었고 군부도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1934년 8월 힌덴부르크가 사망한 후대통령과 총리를 합친 총통 직이 신설되고 히틀러가 그 자리에 오르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그의 1인 천하가 되었다. 히틀러는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제한 없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인 독재자로 등장한 것이다. --- p.224∼225

히틀러의 전격작전으로 유럽이 죽음의 고투를 겪고 있는 동안에도 스탈린은 한가하게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다. 스탈린은 유럽이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후진적인 소련의 우선순위는 경제발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럽이 전쟁을 하고 있는 때가 오히려 따라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탈린은 경제를 발전시켜 놓으면 군사적으로도 강국이 될 것으로 믿었다. 실제로 전쟁에 말려들지 않은 소련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발전하고 있었다.……(중략)
히틀러가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침공할 것이라는 징후는 여러 번 있었고 입수된 첩보도 많았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를 무시했다. 이러한 정세 오판으로 인해 스탈린은 혹독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의심 많고 용의주도한 스탈린이 독일의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히틀러는 이미 1년 전부터 전쟁 준비를 시작했으며 이를 탐지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1941년 1월 스탈린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처칠도 비슷한 정보를 두 번이나 보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를 믿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배경을 의심했다. 그는 독일이 절대 2개 전선에서 동시에 싸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책사가 오히려 술책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통찰력을 과신한 스탈린이 올바른 정보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대신 독·소를 싸우게 하려는 미·영의 술책으로 오판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자신의 엄청난 오판으로 꼼짝없이 당하게 될 상황에 놓인 스탈린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 p.311∼313

후세인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노리는 목표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말썽 많은 샤트 알 아랍 수로의 동안(東岸)을 탈환하여 이라크에 귀속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아랍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쿠지스탄 주가 이란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쿠지스탄 주가 분리될 경우 이란은 현저히 약화될 것이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쿠지스탄의 분리로 다른 주에서도 비(非) 페르시아 계 민족의 집단 이탈을 기대할 수 있었다. 후세인이 노리는 마지막 목표는 호메이니 정부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호메이니는 그의 경쟁자이자 이라크를 불안정에 빠뜨릴 수 있는 최대의 적이다.……(중략)
후세인은 이슬람 혁명을 통해 집권한 호메이니가 그 촉수를 이라크에 미칠까 두려워했다. 반면 호메이니는 후세인을 경멸하고 싫어했다. 후세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에게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모독이었다. 1980년 9월 15일 후세인은 텔레비전 방송에 등장해 이라크가 샤트알 아랍 수로의 절반을 이란에 양도했던 1975년 알제리 협정의 폐기를 선언했다. 그 후 일주일 뒤 이란을 침공했다. 군사적 경험이 전무(全無)한 후세인이 전쟁을 직접 지휘했다. 이에 비하면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지휘봉을 잡은 히틀러는 그나마 나았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이라도 있지 않은가. 후세인은 공격 시기와 목표를 스스로 결정했으며 직접 전선에 나가 전방본부에서 작전을 지휘했다. 독·소 전쟁 당시 히틀러를 능가하는 모습이었다.
--- p.388∼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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