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오시기 직전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며 “자식 밥도 해 주지 못하는 내가 살아 있을 필요가 있냐”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죽으려고 하셨다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게 오시려는 무의식적인 시위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여튼 요즘은 내가 어머니를 모시는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나를 챙기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둘째 동생은 “과부와 홀아비가 정겹게 잘 산다”고 놀리곤 하는데 나이가 들면 모자 사이도 부부나 친구처럼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학교에 딱 한 번 오신 어머니」중에서
어머니는 어쩌다 입맛에 맞지 않는 국은 그냥 내버려 두신다. 여름에는 국을 그대로 두면 금방 쉬고 만다. 말씀을 하시면 될 텐데 마음이 약해 그러지 못하시고 이렇게나마 속내를 드러내신다. 그럴 때면 나도 조용히 그 마음을 읽고 새로운 찌개나 국을 끓이곤 한다. 이라도 튼튼하면 얼마나 좋을까! ---「새 국을 끓이며」중에서
아파트 위층에서 이사를 가는지 지게차 소리가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베란다 창문을 닫아 버렸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답답하다며 창문을 열어 놓으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집에만 계시는 어머니는 지게차에 물건을 오르내리는 소음마저 반가우셨던 것이다. ---「지게차 소음과 어머니」중에서
한참 연재를 할 때였다. 토요일에 나는 새벽 6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딸이 내게 소리쳤다. “야, 인간아! 오십이 벌써 넘은 사람이 죽으려고 환장했어! 아무리 바빠도 잠시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그래요.”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서서 소리치는 딸에게 한참을 혼나며 딸의 사랑을 흠뻑 느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혼자 중얼거리셨다. “자식이 저렇게 힘들게 일하는 줄도 모르고…….” ---「인간만의 늙어 가는 방식」중에서
오늘도 어머니는 묵묵히 나를 챙겨 주시고 있다. 술에 취해 들어와서 컴퓨터 앞에 잠들어 있는 아들의 모습에 안쓰러워하시다가 조용히 컴퓨터 모니터의 푸른 버튼을 누르실 것이다. 그러고는 밤새 지팡이를 짚고 몇 번이나 거실로 나오실 것이다. 내가 방에 들어가 잠이 들면 이불을 덮어 주시고 창문을 닫아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낮에는 하루 종일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실 것이다. ---「어머니의 뒷모습」중에서
‘간병하는 아들’이라면 부모를 학대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해서 아들들이 동성·동세대의 친구들에게마저 간병한 다는 사실을 숨긴다고 했다. 속으로 뜨끔했다. 나도 어머니를 학대한 것은 아닐까?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에 내가 끓인 찌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정을 하는 어머니에게 큰소리를 친 일이나 화가 난다고 일부러 크게 소리를 내며 설거지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럴 때 “니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나!”라며 하소연하던 어머니의 안타까운 얼굴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나는 뭐가 잘났다고 블로그에 주야장창 어머니 간병기를 써 온 것인가! 내 모습이 심히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