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몇 년마다 한 번씩 대표자를 뽑는 투표에 참여하고, 그렇게 뽑은 대표자가 일을 잘 하는지 감시하며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해왔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잘 바뀌지 않았지요. 사실, 정치란 특정 지역에서 특정 권한을 위임 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는 본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결정 사안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그 의견들을 종합하여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정치과정에서 관련된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리를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보면, 정치란 국가라는 공동체 단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공동체의 범위는 친구, 연인, 가족 관계에서부터 교실과 학교, 직장, 마을과 아파트, 지역사회까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할 때 국가도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작은 일상의 관계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을까요?
--- pp.5-6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당과 후보를 찾고 투표하는 것은 소중한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물론 만 19세가 되지 않은 국민에게는 아직 투표권이 없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선거가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이야말로 미래의 유권자로 앞으로 만들어질 제도와 사회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결코 선거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1위로 꼽히는 코스타리카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투표를 실시하기도 합니다. 어른들과 똑같은 투표장에서 일반적인 투표보다 앞서 진행되는 어린이 투표는 실제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선거에 관심을 갖게 하고 미래 유권자들의 선택을 각 정당과 국회의원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투표권이 없거나 소수의 의견까지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 pp.31-32
이번에 대통령이 탄핵된 사건은 정치인과 시민 모두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12월 9일은 공교롭게도 UN이 정한 세계 반부패의 날입니다.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뇌물, 횡령, 사기 등의 부패 행위를 막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로, 2003년 12월 9일, 여러 국가가 동시에 관련된 부패문제를 국제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한 것에서 비롯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헌정 사상 두 번째였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일까요? 탄핵은 대통령과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위법 행위를 저질렀을 때, 처벌하거나 파면시키는 제도입니다. 이를 위해, 국회가 법원에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심사를 신청하는데, 이를 소추라고 합니다. 헌법상,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가 아닌 이상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일반 사법기관에서 대통령의 죄를 따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셈입니다. 세계의 많은 정치학자들은 이 탄핵의 권리가 대의제로 이루어지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 pp.35-36
정치학자 박상훈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참여해보면 정치에 대한 이해가 늘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하는 민주시민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청소년들은 학교 안 자치단체를 꾸리는 것 정도밖에는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갖기 어렵습니다.
이런 우리나라와는 달리 살아있는 민주주의 교육을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201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율 85.8%를 기록한 스웨덴은 정치 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합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민주주의와 투표의 개념을 배우고, 초등학생이 되면 정당의 역사와 철학을 배웁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그 이유에 대해서 토론하는 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 p.38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어려운 듣기 기술은 말하지 않고 조용히 듣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듣는 것 이상으로 말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조용히 하기는 우리의 관심사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의 관심사가 보통 청자의 긍정적인 기분과 경청에 좌우되어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귀 기울여 듣기’에 필요한 한 가지 기술은 다른 사람이 말한 후 잠시 멈추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그 멈춤은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났음을 분명히 하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좀 더 사려 깊은 질문이나 균형 있고 침착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 pp.62-63
한국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는 학생들이 스스로 내면에 끝없이 두려움을 심고, 결핍을 느끼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교육의 본령은 한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가진 고유한 잠재성을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맞는 일을 하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면서도 다른 이들과 공존하는 공동체 일부분으로 살아갈 때 행복과 삶의 의미를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과 제대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인간은 기쁨과 충만함을 느낍니다.
--- p.120
청소년에게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훈련 또한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평등한 공생의 원리, “하나의 공통된 주인”으로서 공감하고 공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청소년기는 그를 훈련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청소년은 선거권이 없으므로 무관심해도 되는, 혹은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하는 계층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그 기능, 가치를 체득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 정치 주체여야 합니다.
--- p.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