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헤어지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아이들이 뿌려 대는 목소리들이 모두 공중에서 산산조각 나서 해용을 찌르는 것 같았다. 수아는 그대로 뒤돌아 갔다. 해용은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 몰랐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수아의 말엔 명백한 오류가 있었다. ‘나랑 사귈래?’라고 해서 사귈 때는 분명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럼 헤어지고 싶을 때도 동의가 있어야 한다. 해용은 아직 수아와 헤어지는 데 동의를 못 했다. 그 사실을 수아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잠시 다툰 거라고. 뭔가 오해가 있는 거라고. 그게 어제의 일이다. --- p.15
이게 다 벚꽃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다 학교의 커플들과 어제 태동이 저지른 개념 없는 짓 때문이다. 근복은 작년까지 여자애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벚꽃, 커플, 이런 건 관심 밖의 일이었다. 컴퓨터 모니터 속 헐벗은 여인들이 근복의 시선을 사로잡긴 했으나 현실 속 여자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가질 않았다. 남자애들끼리 공유하는 야한 영화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묘한 감정을 느끼기는 했다. 그러나 그녀들과 여자애들은 볼륨부터 달랐다. 화면 속 그녀들은 호기심 대상이었으나 현실 속 여자애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 p.34
“생각해 보니 나도 소수자인 것 같아. 대한민국에서 뚱뚱한 여자 사람으로 산다는 건 정말 소수자로 사는 거야.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옷을 안 만들어 주는 사회가 비정상일 수 있는데, 우리처럼 뚱뚱한 애들은 자기 몸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웬만한 옷 가게나 인터넷 사이트 옷은 사이즈가 44, 55, 66밖에 없어. 77, 88, 99 사이즈를 사려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니까. 자기들이 나 짜장면 먹을 때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지나가면 냄새난다고 욕하고 혀를 차고 손가락질하지. 의식주, 이건 인간의 기본 욕구잖아. 뚱뚱한 사람들도 옷은 입고 살아야 하는데 이태원이나 인터넷에서나 옷을 살 수 있어.--- p.136
우리 아빠 허황달 씨가 일찍이 아련한 눈빛으로 ‘첫사랑이 잘 살면 배가 아프고, 첫사랑이 못 살면 가슴이 아프더라.’라는 말씀을 하신 적 있다. 시험 기간인데도 하루 종일 엎드려 있을 정도로 힘들어 하고 있는 가인을 보자니, 가슴 한편이 아려 왔다. 하지만 나는 애써 신경을 끄고, 전국의 고등학교 1학년을 몸부림치게 만들어 주신 정철 조상님이 쓴 「관동별곡」을 해석했다. 그날 밤, 10시쯤 나는 집 책상 앞에 앉아서 다시 국어 자습서를 펼쳐 놓았다. 과학이 정말 걱정되는데, 그나마 자신 있는 국어만 계속 파는 이 심리는 뭘까? 정철이 온갖 허세를 부리며 금강산에서 동해로 출발하는 곳까지 해석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푠이 울렸다. 나는 화면을 보고 눈이 커다래졌다. 가인이였다.
꽃보다 아름다운 열일곱 살 청춘들이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나섰다.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지만, 사랑에 서툴러 좌충우돌, 고군분투하는 청소년들의 성장을 그린 여섯 편의 청소년소설을 한데 엮었다. 각 단편들의 주인공마다 색다른 연애 스토리가 펼쳐지지만,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각각의 에피소드가 다른 단편들과도 얽혀 있다. 데이트 폭력, 첫 경험, 짝사랑, 부모의 집착 등 10대들이 사랑을 하며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사건과 주제를 그들의 시선에서 무겁지 않은 필체로 흥미롭고 사실적으로 그려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