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경제이론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라고 가정한다. 자신의 이익만을 합리적으로 추구한다면 남이 얼마나 큰 이득을 얻든 상관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부단히 나와 남을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은 100의 이득을 얻는데 자신은 1의 이득밖에 얻지 못하는 정책을 달가워할 리 없다. 그러나 전통적 경제이론의 틀에 얽매인 사람들은 이와 같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 내가 이 책을 쓰려고 마음먹은 주요한 동기는 바로 이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이 책을 통해 소개하려고 하는 행태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 따르면, 다른 사람에 비해 엄청나게 적은 이득밖에 얻지 못하는 상황에 불만을 갖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특별히 질투심이 강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아주 평범한 보통 사람도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 중요하다. --- p.10「프롤로그」중에서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지금 말하고 있는 경제학이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경제학이란 말을 ‘교과서에서 배우는 전통적 경제이론’을 뜻하는 말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다른 경제이론이 있다는 말인가? 맞다. 그런 경제이론이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행태경제학이 그 좋은 예다. 행태경제학의 첫 장을 연 사람들 중 하나인 세일러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이콘’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콘은 오직 물질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갖고, 극도로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와 같은 특성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컴퓨터에 맞먹는 기억 용량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며, 간디 같은 의지력의 소유자도 극히 드물 것이 분명하다. --- p.25「경제학의 거울에 비친 인간의 모습」중에서
행태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의 만족감과 직결되는 것은 소득이나 재산의 크기 그 자체가 아니라고 한다. 사실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언제나 행복감을 느끼며 사는 것은 아니다. 큰 재산을 모으면 만족감이 크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상태에 익숙해져 만족감이 별로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행태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매우 큰 설득력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학 교과서를 보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위험 부담을 싫어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즉 사람들은 ‘위험기피성향(risk aversion)’을 갖는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말로 싫어하는 것은 위험을 부담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 수 있다. 이들이 정말로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손해를 볼지도 모르는 사실이다. 자기가 지금 가진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걱정은 사람들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위험기피성향이 아닌 바로 이러한 ‘손실기피성향(loss aversion)’이 인간의 중요한 특성이라는 것이 행태경제학자들의 지적이다. --- p.100「손해를 보는 것은 정말로 싫다_손실기피성향」중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다. 어떤 물건을 사서 써보니 불편하기 짝이 없는데도 들인 돈이 아까워 계속 쓰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불편함이 너무 커서 아예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면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걸 계속 쓴다고 해서 이미 지불한 돈이 한 푼이라도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미련 없이 버리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 p.141「돌이킬 수 없는 것에 연연하는 우리」중에서
사람들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미묘한 데가 있어 약간의 상황 변화에도 공정성의 판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예는 이 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오래 전 미국 아동들 사이에서 양배추밭 인형 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모든 아이들이 이걸 갖고 싶어 하니 크리스마스에 즈음해서는 이 인형이 동이 나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떤 가게 한 구석에서 이 인형이 하나 발견되었고, 가게 매니저는 그것을 경매에 붙이기로 결정했다. 이와 같은 결정이 공정한 것이냐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을 물어봤더니 74%의 응답자들이 부당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매니저의 그런 결정이 마치 큰 눈이 내린 후의 제주도 숙박업자나 택시 운전자의 행동과 비슷한 성격의 것으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하려는 부모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자신의 배를 불리려 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설문을 약간 바꿔 그 경매에서 얻은 돈을 전액 유니세프에 기증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압도적 다수인 79%의 응답자가 ‘괜찮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똑같이 경매에 붙인다 하더라도 경매 수입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정당성의 평가가 달라졌던 것이다. --- p.249「우리는 무엇을 공정하다고 느끼는가?」중에서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람은 모두 공정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인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공정성에는 자기가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측면이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어 회사가 자신을 공정하게 대접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도 열심히 일해 회사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반면에 회사가 공정하지 못한 대접을 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은 게을리 일함으로써 보복을 하려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임금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많은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임금이다. 나와 비슷한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월 300만원을 받는다면 나도 당연히 그 정도는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혹은 나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월 500만원을 받는다면 나도 그 정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