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다른 문학적 장치들, 이야기, 구약성경에 대한 언급들, 그리고 특정한 문학적 장르들을 분명하게 사용하면서, 요한계시록에서 그가 말하는 내용을 우리가 이해하도록 돕는다. 만약 우리가 요한이 사용한 방법들을 이해한다면, 요한계시록은 독자들이 읽기를 꺼려하는 책이거나 현대의 예측 차트가 아닌 본래 목적의 그것, 즉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에 대한 증언으로 보일 수 있다. 요한이 각각의 문학적 장치들을 사용하는 방식을 우리가 이해한다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개별적인 구절들과 그 책 전체의 신학적 메시지를 훨씬 더 잘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 「2장 문학으로서의 요한계시록」 중에서
여전히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은 최후의 심판이다. 요한계시록은 그것에 대해 상세히 밝히지만, 그 내용은 그 책의 끝부분에 가서야 등장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을 이 책의 메시지가 처음에 비롯되었던 직접적인 상황에 처해 있던 애초의 독자에게뿐 아니라, 역사 전체를 통해서,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교회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살피는 데 맞춰야 한다.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마지막 때 ― 그 시기는 예수의 성육신부터 그분의 재림 때까지 이어지며, 또한 그러하기에 요한의 과거와 현재로부터 그의 미래로까지 확대된다 ― 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기를 원하기에, 우리는 그의 설명이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지속적인 적합성을 갖는다고 확신할 수 있다.
--- 「3장 구속의 드라마」 중에서
짐승은 바다(13:1)와 동의어인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며(11:7)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해 싸움을 건다. 그는 세 가지 방식으로 성자 하나님을 조롱한다. 첫째, 그는 용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사탄처럼 짐승은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을 갖고 있으며, 각각의 머리에는 신성을 모독하는 이름이 있다(13:1). 이런 신성 모독적인 이름들은 그리스도의 이마에 있는 이름과 대조되며(19:12), 그 머리에 있는 열 개의 왕관들은 그리스도가 쓰고 계신 많은 관들과 대조된다(19:12).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인 것처럼, 짐승은 용의 형상이다.
---「5장 하나님의 적들에 대한 서술」 중에서
특별히 요한계시록의 이야기는 신약성경의 이야기다. 비록 요한계시록이 구약성경의 주제와 사건들에 의존하고 있을지라도, 그 책의 시대적 틀은 특별히 예수의 초림과 재림 사건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그 두 차례의 강림은 요한계시록에서 발생하는 일을 위한 북엔드로서의 역할을 한다. 한쪽에는 십자가와 빈 무덤 사건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리스도가 영광에 싸여 돌아오시는 사건이 있다. 요한은 이 사이의 기간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상징적인 숫자들을 사용하는데, 그중에는 42개월, 1,260일, 그리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포함되어 있다. 이 숫자들은 모두 동일한 시간을 가리키며, 또한 모두가 다니엘서로부터 인용된다. 42개월이 어떻게 1,260일과 연결되는지를 아는 것은 아주 쉽다.
--- 「6장 어린양의 전쟁」 중에서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어떤 식으로 읽을 수 있는가? 요한계시록이 오늘날의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연관성을 이해하기 위한 한 가지 자원은 네덜란드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에 의해 유명해진 ‘대립’(antithesis)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온다. 요한계시록은 두 가지 선택 사항을 제시한다. 하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용을 섬기는 것이다. 믿음, 성, 정치, 혹은 경제에는 중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분야들에서 신실하게 혹은 신실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을 뿐이다. 카이퍼는 신실함과 신실하지 않음을 가르면서 중앙에 그어진 선을 “대립”(antithesis)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사업이나 건강관리에 관해 생각할 경우, 우리는 그 영역에서 우리의 사상과 행위가 어린양에 대한 증언을 반영하는지, 아니면 용의 지배에 대한 굴종 및 음녀와의 제휴를 반영하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 「7장 오늘날 요한계시록 읽기」 중에서
요한계시록은 흥미진진한 책이다. 그 책은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용들과 짐승들, 심판의 나팔을 부는 천사들, 그리고 정복하는 왕으로서 영광에 싸여 돌아오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때때로 이런 비유적인 이미지들은 오늘날 신자들이 요한의 묵시록을 꺼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분명히 그런 이미지들은 우리의 현대적 상상력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연구 전체를 관통해 온 한 가지 목표는, 요한이 여러 가지 문학적 장치들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것을 밝힘으로써 요한계시록을 보다 접근하기 쉬운 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 「8장 결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