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식으로 철저하게 자기 잇속만 차리는 사람이 당연히 유리하지 않을까. 그러나 실제로 성공한 사람 대다수는 그처럼 단순하고 노골적인 이기주의자가 아니다. 눈 앞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욕심쟁이는 기껏 잘돼야 이름 없는 작은 부자 정도에 그치고 만다. 특히 '대중의 시대'인 현대에는 절반쯤은 진심으로 '고객 여러분의 만족과 사랑'을 지향하는 장삿꾼이라야 성공한다.
단 '고객 여러분의 만족과 사랑만을' 지향해서는 손해만 본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요약하면, 인간세상에서 완전한 이타주의는 금방 자멸하며, 완전한 이기주의는 주위로부터 배척당하고, 적당한 이타주의는 환영은 받겠지만 남의 봉이 되기 쉽고, 따라서 적당한 이기주의만이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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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규범을 잘 받아들이고 못하고는 당근에 의한 보상효과에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규칙이나 계율은 원래 그것을 어길 경우를 대비해 마련한 벌칙을 통해 구성원을 통제한다. 도덕이나 법률이 음울하고 딱딱한 인상을 주는 것도 지키지 않을 경우에 가해지는 채찍과 관계 있다.
채찍이,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한 호감과 애정을 거둬들이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앞서 말한 보상의존성 문제로 돌아간다. 그러나 보상의존성이 낮은 사람에게 이런 채찍은 별 효과가 없다. 좀더 적극적인 방법, 즉 주위로부터 경멸·적의·혐오·공격을 받는 채찍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껴 어떻게든 그런 상황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도덕적인 인간이 되든가 최소한 부도덕하지는 않은 생활을 강요받게 된다.
좀더 노골적으로「거짓말을 하면 염라대왕이 혀를 뽑아버린다」「업보로 고통스러운 인간계에 다시 태어난다」「재림한 하느님한테 형벌을 받는다」라고 경고하거나 미래로 상정된「심판의 날」을 심리적 위협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 pp. 101-102
결국 양심의 가책은 가끔씩 느껴야 정상이다. 그것이 건전한 초자아를 갖추었다는 증거이고 자기 인지가 부정확 해지지도 않으며, 규범 가치관 면에서도 세상에서 통용되는 범위를 벗어나 극단으로 달리지 않는 길이다
--- p.114,---pp.18-21
결국 도덕을 권장하는 것은 주위의 부도덕한 인간들을 살찌우는 결과도 초래한다. 확실히 부도덕한 부류가 어느 시대건 살아남는 것은 희생양, 즉 선량한 사람들 덕분인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이타적인 태도나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태도가 둘 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너무 도덕적인 것은 지나친 부도덕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적응하는 데 실패하기 쉽다.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공익에 반하는 길로 빠질 수 있다. 그런데도 도덕성은 발달시켜야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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