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는 체 게바라겠네
유시민
법치주의는 국민이 얼마나 법을 잘 지키느냐가 아니라
정부가 얼마나 헌법에 따라 통치하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전여옥 : 저도 한때는 진보였습니다.
유시민 : 전여옥 씨가 진보였으면 나는 체 게바라겠네요.
유시민 한국, 1959~ ∥ 작가ㆍ정치인
대학생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 두 차례의 감옥살이를 하였고, 1985년 이른바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투옥되었을 때 제출한 항소이유서로 유명해졌다. 20대 후반에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집필가로서도 이름을 알렸다. 사회평론가 및 MBC의 '100분 토론' 사회자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해 제44대 보건 복지부 장관과 제16ㆍ17대 국회 의원을 지냈다. 주요 저서에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의 경제학 까페』, 『후불제 민주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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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것과 바른 것
강풀
착하게 사는 것 좋지. 그런데 착하게 사는 거랑 올바르게 사는 거랑은 다른 것 같아. 남들이 하자는 대로, 그게 틀린 것 같아도 그저 반대하지 않고 하자는 대로 하면 착하다는 말을 듣게 되지. 착하게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쉽네. 올바르게 사는 것이 어렵지. 지금은 착하게 사는 것보다 올바르게 사는 게 맞는 것 같아.
강풀 한국, 본명 강도영, 1974~ ∥ 만화가
‘풀’은 대학 때 주로 풀색 옷을 입고 다녀 붙은 별명이다. 상지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 여러 잡지사의 문을 두드렸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2002년 개인 홈페이지에서 주로 엽기적인 내용의 만화를 그리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본격적으로 서사가 있는 장편 만화를 연재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만화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만화는 왠지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유머는 품격이 있고 주제는 깊고 오묘하다. 그의 만화에는 삶이 아주 진진하고 아름답게 녹아나 있다. 대표작인 『순정만화』, 『아파트』 등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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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위대함
노희경
나는 한때 내 성장과정에 회의를 품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만약 가난을 몰랐다면 인생의 고단을 어찌 알았겠는가. 내가 만약 모범생이었다면 낙오자들의 울분을 어찌 말할 수 있었겠으며, 실패 뒤에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작가에겐 아픈 기억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아니, 작가가 아니더라도 그 누구에게나 아픈 기억은 필요하다. 내가 아파 보아야 남의 아픔을 알 수 있고, 패배해 보아야 패배자의 마음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_『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중에서
노희경 한국, 1966~ ∥ 드라마 작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MBC 베스트극장 '세리와 수지'로 데뷔했다. 이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꽃보다 아름다워', '그들이 사는 세상'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을 향한 따뜻한 메시지를 계속 전하며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수필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써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6년 MBC 창사 특집 드라마였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소설로 펴낸 그녀는 인세를 모두 기부하는 등 가난과 고통으로 허덕이는 어린이들을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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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세기
안철수
어떤 학생이 제게 전공이 자신에게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것에 도전하려고 하는데 두렵답니다. 도전했는데 막상 해보니 안 맞으면 어떡하나, 그러면 또 긴 시간을 소비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강물의 세기를 강둑에 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강물을 직접 건너봐야 알 수 있습니다. 고민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행동을 하고 부딪혀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하는 시간들 또한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민하고 경험하면서 얻는 교훈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실패는 값진 경험입니다. 실패를 통해서 또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철수 한국, 1962~ ∥ 벤처사업가ㆍ경제학 교수ㆍ컴퓨터 백신 개발자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얻어 단국대학교에서 의과대학 전임 강사와 의예과 학장을 지냈다. 대학원 시절 자신의 컴퓨터에 감염된 바이러스의 치료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을 계기로 연구를 계속하다가,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하여 컴퓨터 전문 주치의가 되었다. 이후 꾸준한 연구 개발을 통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꾸려오면서 모범적인 벤처 사업가의 전형이 되었다. 현재는 안철수 연구소의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서 석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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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야 알았다.
한비야
벼랑 끝 100미터 앞, 하느님이 날 민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나?
10미터 앞, 계속 민다.
이제 곧 그만두겠지.
1미터 앞,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밀진 않겠지?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알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었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그건 사랑이었네』 중에서
한비야 한국, 1958~ ∥ 오지 여행가ㆍ작가ㆍ전 월드비전 긴급구호팀 팀장
서른다섯의 나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늘 꿈꾸던 세계 여행길에 올랐다. 세계의 오지들을 여행하였고, 이러한 경험들을 담아 책을 펴내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후 여행보다 더 가슴 뛰는 일을 찾아 긴급구호 활동가로 일했다. 현재는 미국에서 유학하며 또 다른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한비야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현장에서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용기란 어떤 일을 시도할 때 두려워하지 않음에서 생기는 것이며 용기의 정도는 그가 얼마나 그 일을 하고 싶은가하는 열정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인다. 또한 그녀는 자신만의 인생 시간표에 맞춰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서 그녀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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