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2년 문학동인 ‘작법’을 결성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1984년 <소설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작품으로는 소설집 『또 하나의 계곡』, 중편집 『어머니의 초상』, 장편소설 『북국의 신화』, 『공명의 선택』전3권), 『평설열국지』(전13권), 『초한지』(전5권), 『무운행장기』, 『자객열전』 등이 있으며, 편역서로 『재미있는 검객 이야기』 등이 있다. 글을 쓰는 한편으로 정통 검도를 꾸준히 수련했으며, 한국사회인검도연맹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대한검도회 상임이사, 한얼검도관 관장이기도 하다.
“바둑이란 돌을 어디에다 둘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예전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모든 사물의 이치란 그 근본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선생님의 그 말씀을 듣고 바둑의 근본을 이해했습니다. 바둑은 어찌 되었든 집짓기입니다.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보다 땅을 많이 차지하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는 놀이가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바둑을 둘 때 싸움에서 이기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집을 늘릴까 생각하며 바둑돌을 둘 뿐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선생님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제 돌 두는 길이 많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아 ―― !” 제갈량의 말을 듣고서야 채 노인은 비로소 어째서 자신이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졌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는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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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는 처음에는 공명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건방진 놈이다.’ 별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서서의 눈에는 건방지게 비친 것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 침묵 속에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의혹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것이 서서의 성격이었다. 하루는 스승 사마휘를 찾아가 물었다. “공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명은 와룡이다.” 사마휘는 단 한마디로 대답했다. 세상의 유명하다는 인물 비평가들도 그의 앞에만 서면 허리를 숙인다는 사마휘의 안목이다. 그 안목이 공명을 ‘와룡’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서서는 내심 질투심을 느꼈다.
--- p.199
유비는 비로소 서서의 말을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확신이 서지 않는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번에 찾아가서 만나지 못한다면 더욱 낭패 아니겠소?” 그런 유비를 향해 서서는 마지막 일침을 가했다. “백척간두 진일보입니다.” “백척간두 진일보?” “그렇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때 천하를 얻을 수 있습니다. 버리십시오. 세 번인들, 다섯 번인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문득 유비의 눈에 섬광이 스쳐갔다. 덥석 서서의 손을 움켜잡았다. “이 유비가 잘못 생각했소. 공의 말씀대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와룡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찾아가겠소.” ‘삼고초려’, 혹은 ‘삼고의 예’라고도 불리는 유비의 세번째 공명 방문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