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2년 문학동인 ‘작법’을 결성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1984년 <소설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작품으로는 소설집 『또 하나의 계곡』, 중편집 『어머니의 초상』, 장편소설 『북국의 신화』, 『공명의 선택』전3권), 『평설열국지』(전13권), 『초한지』(전5권), 『무운행장기』, 『자객열전』 등이 있으며, 편역서로 『재미있는 검객 이야기』 등이 있다. 글을 쓰는 한편으로 정통 검도를 꾸준히 수련했으며, 한국사회인검도연맹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대한검도회 상임이사, 한얼검도관 관장이기도 하다.
“제가 관운장을 보내어 일부러 조조를 살려보내는 까닭을 아십니까?” “나는 모르겠소.” “아직은 조조를 죽일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조조를 죽일 때가 아니라는 것이오?” “그것은 아직 주공께서 마음 놓고 다리를 뻗을 땅 하나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지금 조조가 죽으면 천하는 또다시 어지러움에 빠질 것이고, 수많은 군웅이 할거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공은 더욱 발붙일 곳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럴 바에는 조조를 살려두어 북방에 세력을 펼치게 하여 손권을 비롯한 뭇 군웅들을 견제하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조조는 이번 싸움을 계기로 손권을 원수처럼 여길 것입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유비에게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손권에게 복수하려 들 것이다. 그 틈을 이용하여 유비는 형주의 일부 땅을 차지하고 파촉으로 진출할 힘을 쌓는다. 이것이 공명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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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 손권의 누이동생은 유비에게로 시집을 왔다. 공안 포구로 마중 나간 유비 진영은 깜짝 놀랐다. 배에서 내리는 손 부인은 물론 그 시녀들까지 한결같이 중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 부인이 여걸이라는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공명은 기가 차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시집을 온 것이 아니라 싸움을 하러 온 것이로군.” 마량에게 중얼거렸다. 손 부인의 그러한 행동은 신혼생활 중에도 변함이 없었다. 신방 주변으로 언제나 1백여 명의 무장 시녀들을 배치해놓았다. 유비 외에는 다른 사람의 출입을 일절 금지시켰다. “밤이 두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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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하시다는 말씀을 듣고 승상께서 잡수시라고 보냈습니다.” 심부름꾼의 말이었다. 순욱은 보자기를 풀었다. 음식을 담는 합이었다. 합 위에는 조조의 친필 편지가 놓여 있었다.
승상 조조가 그대를 위해 보내노라.
순욱은 합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그릇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순욱은 누구보다도 조조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다.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뜻이 분명했다. ‘이것은……?’ 죽으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순욱은 조조의 차가운 눈길을 보는 듯했다. 씁쓸히 웃었다. 미련은 없었다. 후회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그동안 틈나는 대로 적어온 비망록을 모두 꺼내어 불에 태웠다. 앞으로의 천하 경영에 대한 비책을 적은 글들이었다. 불꽃이 일었다. 천하가 타고 있음이었다. 그 불꽃을 바라보며 순욱은 술잔에 독약을 풀었다. 순욱은 그렇게 죽어갔다. 나이 오십이었다. “아깝구나!” 공명은 탄식했다. 또 한 사람의 기재가 사라져갔다. 순욱의 죽음에 대한 추모라기보다는 주인을 잘못 선택한 그의 안목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