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양놈한테 미쳐서 애들 밥이나 안해주고 해싸면 내 죽은 귀신이라도 독일로 날라가 니를 잡아묵을 끼다.'
내가 서울을 떠나올 때 공항 한구석에서 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독기 서린 작별인사였다. 아이 셋을 끌고 미친 것같이 타국으로 떠나는 딸을 보고 어머니는 따뜻한 저의 눈물을 흘리는 대신, 나의 가슴에 독일 생활의 신조를 말뚝처럼 벅아준 것이었다. 그 옆의오라비는 또 뭐라 그랬던가. 내가 쉬이 다시 와 껍죽대고 전시회나 열까봐 손까지 흔들며 미리 막았다.
'우리나라도 예술가가 많으니 너까지 수고할 필요 없어. 대가도 못된 주제에 외국에서 서너 번 전시하고 부풀려 선전해 고국사람 속일 것 없어, 속을 사람두 없구...'
그랬다. 애들 밥이나 잘 해주었는지, 진실한 예술가였는지..
--- p.265
의사는 임신임을 선언했다. 토마스는 뛸 듯이 기뻐했다. 마흔다섯 살의 임신은 주위사람
을 불안하게 했다. 서른 다섯만 되면 임신을 신체적으로 거부하는 독일 사람은 대부분 나
의 임신에 부정적인 태도였다.
' 너는 달라, 너는 내 아내야. 남의 말을 듣지마.'
토마스는 내가 불안해하자 단호하게 말했다.
유전성 임신, 저능아, 신체부자유자가 꾀 많은 독일에는 이상 임신의 연구가 활발했다. 마
흔 넘은 여자의 임신은 일단 의심하고 들었다. 몇몇 사람과 의사도 진단을 해보라고, 임신
중절까지 권유했다.
프리들 아주머니는 나의 불안을 감지하고 마리아처럼 조용히 나를 쓰다듬었다.
'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 하나님 뜻에 맡기세요. 당신 남편이 저렇게 지뻐하는 얼굴을 보
면 백 퍼센트 건강한 아일 나을 겁니다. '
---244p
노란 민들레가 뮌헨 근교에 한없이 쏟아져 깔리고 있었다. 키니네 봉지를 쏟아 급히 주어 담으며 느끼던 노란 현기증의 어린 시절, 그 어지럼증이 나른한 봄날 속에 핑그르르 맴돌고 있었다. 지천에 핀 민들레 때문일까? 저쪽 끝에는 드물게 보는 푸른 하늘에 나풀나풀 까만 머리칼을 날리며 한국의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토마스는 내 이마를 만져 주며 외로운가 물었다. 그럴까? 그 외로움이 봄날의 내 생각과 풍경을 뒤범벅 시키고 있는 걸까?
--- p.14
나는 용감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집에서만 쓰던 분홍 포대기에 애기를 업어 질끈 묶고 거리로도 나가고, 산책도 하고, 물건도 사니 참으로 편했다. 조남진씨가 뮌헨에 들렀을 때 애기를 등에 업고 식당으로 나갔더니 의아해 하는 눈치였다. 그것뿐만 아니라 애들이 뭘 달라고 조르고 징징거려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쓸데 있는 말만 하며 연극배우처럼 고상한 주부가 되어 병 걸려 죽는 것보다 나도 살아야 할 것 같았다. 화나면 화나는 데로 삿대질하며 부부싸움을 벌였다. 애들이 말을 안들으면 상식 있게 조용히 타이르는 독일 엄마들과 달리 소리를 꽥 질러야 시원했다. 그랬더니 속의 멍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