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녀가 커 가는 동안 살인마는 늙어 가고 있었다. 마리온은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의 살인마는 여전히 그날 봤던 즐거운 얼굴로 사람을 죽이면서 웃었다. 피가 흐르는 시체의 산 위에서 혼자 살아남은 놈이 편안히 누워 눈을 감았다. 시체들이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피눈물을 흘렸고, 엄마는 시체의 산 맨 아래에서 피로 물드는 세상 속에 잠겨 들었다. 꿈속의 그녀는 발목을 잡힌 채 꼼짝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그 모든 광경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깨어날 때마다 마리온은 발작처럼 중얼거렸다. 그놈이 먼저 죽어 버릴 거야. 내가 복수하기 전에 먼저 죽을 거라고. 편하게, 잠들듯이 죽을 거란 말이야. 절대 그럴 순 없어. 안 돼. ---p.11
야신이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었다. 마야의 경찰은 늘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때문에 경찰은 대체로 실종 사건보다 절도나 살인 사건에 집중하기 마련이었다. 증거가 있고, 피해자가 있으며, 정정당당하게 과실을 따질 수 있는 사건들에. 프로그램 이야기를 빼놓은 첸 타이샨의 이야기는 단순 실종으로 보기 딱 좋지 않은가. 경찰의 수사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탐정이 못 찾아냈다니 그건 확실히 이상하군. 야신은 생각했다. 첸 타이샨은 연구원이지 은신 전문가가 아니었다. ---p.129
마리아 프리스는 쥐어뜯긴 머리를 벽에 문지르며 울었다. 퀴퀴한 쓰레기 냄새가 나는 좁은 골목, 술집 뒷문 옆에 앉아 벽에 머리를 비비며 다리를 쳐 대자 다리 사이로 시커먼 것이 지나갔다. 깜짝 놀란 그녀가 소리를 지르자 그것이 구석에 숨어 홱 돌아보았다. 커다란 시궁쥐였다. 쥐 주제에 토끼만큼 큰 녀석의 안광이 번쩍이는 눈에는 두려움이라곤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