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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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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 소설가 백영옥의 유행산책 talk, style, love

백영옥 | 예담 | 2007년 12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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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42쪽 | 374g | 140*205*20mm
ISBN13 9788959132737
ISBN10 89591327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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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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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 천하의 재수덩어리가 되고, 50만 원짜리 술을 마시면 대단한 호쾌남이 되는 이 비논리를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적어도 술을 싫어한다는 진실이 왜곡되는 상황들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저 술 못마시는데요’ 라고 말하면 ‘에~ 거짓말’ 이런 식 말이다. 정말 난감하다.
--- p.30

고생 끝에 낙 온다 란 말이 있다. 하지만 나로 말하면 불행히도 고생 끝에 병 온 사람을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요컨대 속담에도 동전의 양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애를 낳아야만 진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애늙은이 같은 아이와 철떡서니 없는 어른이 동시에 잘 섞여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를 싫어하거나 아이보다 애완견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것이 사랑하는 가족이고 준엄한 국가라 해도 말이다.
--- p.45

모든 연애는 내게 늘 어떤 교훈을 남겼다. 그가 내게 남긴 건 ‘기다리면 전화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에고이스트’라는 향수 덕분에 그는 내게 영원히 이기주의자로 남아 있다. 사랑의 영역에선 어떤 향수를 쓰느냐 하는 사소한 문제도 그 사람의 잔상을 완전히 뒤바꾼다. 향기란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 p.55

나이 서른이 넘기고서야 하는 시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장만큼 멋진 곳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좋은 레스토랑들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바로 테이블 위에 계절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계절의 원형이 ‘시장’에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에 싱싱한 시간들이 찰랑찰랑 고여 있다. 등 푸르고 팔딱거리고, 쌉쌀한 시간 말이다.
--- p.67

우리는 바야흐로 예술이 놀이인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이 갖다 버린 현수막을 주워 장바구니를 만드는 재활용 예술가가 존재하고, 한국 도로교통 공사가 설치한 과속방지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아트’라고 외치는 사진가가 존재하는 시대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예술적으로 잘 노는 것’에 있지 않을까.
--- p.110

옷 못입는 게 검소하고 소박한 것의 상징인 시대는 갔다. 스타일 없고, 옷은 못입어도 내면과 지성은 알랭 드 보통에 셰익스피어 뺨친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나로 말하면 내면은 깊은데 표면적으론 예의도, 맵시도 없는 사람은 질색이다(외면도 알 길 없는데 하물며 내면은 어찌 다 안단 말인가!). 담배 피는 여자가 이들에게 정서적 폭력이라면, 그들의 허리춤 위로 껑충 올라간 벨트나 왕뽕이 나 같은 사람에겐 무지막지한 시각적 폭력이니까 말이다.
--- p.153

패션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프라다를 좋아하냐고? 오브 코오스, 물론이다! 그런데 프라다보다는 프라다 스타일의 옷을 더 많이 사 입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니까 내 말은 뭐냐 하면, 진짜 만고의 진리란 수요 공급은 언제나 늘 불일치하는 거, 그거다, 그거. 사고 싶은 옷은 많다. 하지만 돈은 늘 없다. 천하의 사라 제시카 파커도 옷장 앞에선 입을 옷이 없다고 툴툴댄다고 하니, 과연 신은 공평한가.
--- p.158

학습해야 할 ‘나쁜 것’이 이렇게 많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그건 분명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 아닐까. 안타까운 건 ‘나쁜 여자’ 라는 타이틀이 자신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 나쁜 여자들의 그 대책 없는 나르시시즘이다. 어린 시절에 먹었던 ‘아폴로’나 ‘쫀쫀이’의 불량스런 맛은 쉽게 잊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한 번만 빨아도 혓바닥 전체가 새까매지던 ‘죠스바’의 무시무시한 매력은 어떤가. 하지만 불량식품은 나쁜 음식일 뿐이다. 매일 먹을 수도, 매일 먹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쁜 게 좋다고 자꾸 우기지 말자.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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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문화적‘인 듯’ 보이며 패셔너블하다‘고들’ 하는 사람들의 뒷마당엔 어떤 쓰레기가 널려 있을까? 아니면 어떤 꽃다발이? 그건 아주 중요한 시대적 사조를 만드는 걸까, 아니면 딱 5분 동안만 왁자지껄 번잡스럽게 끌탕을 치다 버려지는 걸까? 공작처럼 깃을 세우고 서로 뻐기는 이들의 문화엔 참다운 문화적 속성이라 할 만한 게 있을까? 또 그들이 온갖 고상함과 고매함을 다해 떠들어대는 패션은 진정한 의미의 패션일 수 있을까?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는 ‘트렌드’라는, 한입 거리 가벼운 낱말을 전면에 포진시킨 채, 그 개명한 척 피곤한 뒷골목의 한 신을 부려놓는다. 그런데 관점 자체가 덮어놓고 냉정하거나 무턱대고 현란하지 않아서 우선 속이 편하다. 세속적이지만 경박하지 않고, 사색적이지만 훈계조도 아니다. 게다가 가십을 다루어도 저열해 보이지 않는 건, 누구 말대로 잡지 표지처럼 통속한 인생 안에도 정금正金처럼 광채를 내뿜는 나름의 ‘스타일’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 이충걸 (GQ KOREA 편집장)
이 책에는 피카소에게 청색시대가 있다면, 자신에게는 흑석동 시대, 신사동 시대가 있으리라고 주장하는 예술가,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늘 걸치고 다니던 향수 '에고이스트 플래티넘'을 더 이상 애용하지 않는 여자 등이 나온다. 메트로 서울을 가득 메운, 은하수의 별빛만큼이나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 비록 패션과 문화를 얘기하지만 백영옥은 이 책을 메트로 서울의 사람들과 이야기에 바친 듯하다. 동안童顔이 트렌드고 안티에이징이 대세라고 해도, 그래서 거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녀는 수입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남자가 더 좋다고 말하며 한강으로, 수목원으로 걸어 다닌다. 아무리 걷기 힘든 서울이라고 해도 그렇게 걸어 다닐 수 있는 한, 그녀는 꿈을 꿀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33세 서울 여자의 몽상록이다.
-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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