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족한 내 모습에 대해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다. 내가 어떻게 하면 변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먹는 것을 줄이면 날씬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식단 조절은 어렵고, 아침 일찍 운동을 하기는 더 힘들다. 그래서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하곤 한다. 이처럼 인간은 본래 편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머리로 안다고 해도 실행이 쉽지 않다. 그러니 지금 모습은 여전히 불만족스럽고, 이때 우리는 자신을 더 억누르고, 더 엄격하게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타인보다 자신에게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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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를 타며 완전히 겁에 질린 아이를 본 적이 있다. 아이는 앞에 있는 소방차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 회전목마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방향을 맞추는 일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아이는 부모에게 손을 흔드는 동작을 할 틈도 없었다.
바로 이런 일이 우리의 삶에도 일어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나름대로 제대로 처리하고 싶어 무척 애를 쓰지만, 정작 우리가 고통을 마주했을 때,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회전목마는 정해진 방향대로 도는 것이고 소방차도 단단히 고정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 아이는 즐거운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부모에게 즐겁게 손을 흔들어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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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모든 모습을 사랑할 필요는 없다. 사실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모든 면을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특징과 마음에 드는 점을 함께 갖고 있다. 독특한 탐욕이나, 질투심, 복수심, 이기적인 태도, 끊임없는 불평불만, 비겁한 태도와 같은 특징을 모두 좋아할 수는 없다. 이런 특징까지 모두 좋아할 필요도 없으며,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를 비난할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점들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며, 건강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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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아이가 슬픈 표정을 지을 때, 하늘에 날아가는 아름다운 새를 보여주고 아이가 ‘다른 생각을 하도록’ 계속해서 말을 걸곤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인생에는 슬픈 일도 있는 것이고, 다만 슬픔은 어느 날 찾아왔다가 다시 사라지곤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슬픔이 오자마자 서둘러 슬픔을 떨쳐버리려고 하는 사람은, 그 슬픔이 저절로 사라지는 경험은 절대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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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욕구에 따라 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삶을 즐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종종 이 말 때문에 자신에게 친절하다는 것을 완전한 이기주의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 다음은 그중에서 어떤 것을 어떤 형태로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신청곡을 들려주는 음악 프로그램도 아니고, 당연히 모든 욕구를 실현할 수는 없다. 늘 타협할 자세를 갖추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욕구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류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핵심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인지’해야만 그것을 ‘이행’할지 또는 ‘보류’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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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나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아 기쁘다. 하지만 칭찬을 들으면 그만큼 상대를 만족시켜줘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자신을 싫어하거나 자신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듣는 말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지라도 내가 좋아하고, 또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분명 큰 고통일 것이다. 나의 욕구에 맞춰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살다보면 내가 자유로워 질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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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요구는 실패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속적인 긴장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물론 높게 설정한 목표를 충족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의 불평꾼이 “아주 잘했어. 네 목표에 도달했구나. 이제 푹 쉬렴” 하고 말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목표치를 몇 센티미터라도 더 높일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마라톤에 출전한 선수가 골인지점 500미터를 앞두었을 때, ‘구간을 5킬로미터 연장합니다’란 팻말이 보이는 상황이나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숨 막히게도, 그 팻말은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마다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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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가짐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라는 피해의식이 차츰 사라지고 세상만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줄어들자, 눈이 떠졌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자신의 세계에 사로잡혀 쉴 새 없이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종종 나와 다투던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게 되었다. 그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는 내 시각이 변해서, 전에는 늘 나에게 상처만 준다고 생각한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상처받게’ 하지 않았고, 이제 나 말고 그 누구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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