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샤토브리앙의 「르네」:젊은 시절 소설가 이문열에게 애절함과 격정, 회한과 고독, 지성과 교양을 두루 가르쳐 준 격조높은 소설. 토마스 울프의 「그대 다시 고향에 못가리」와 더불어 이문열 초기 문장수업에 가장 많은 흔적을 남긴 작품.
테오도르 슈토름의 「호수」: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영혼의 낙인. 어차피 헐벗고 쓸쓸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의 한 살이를 견딜 만하게 해주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처를 보여주는 소설.
안톤 체홉의 「귀여운 여인」:홀로 서지 못하는 가망 없는 여인. 이 여인과 더불어 지금껏 행복했던 남자들의 이야기.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세월과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전율스러움. 애인을 독살한 뒤 홀로 늙어가며 긴 세월의 처절한 외로움과 이웃의 천박한 호기심과 변하는 세태에 꿋꿋이 맞서가는 한 여인의, 스산하면서도 장엄한 노을 같은 사랑과 삶을 그린 소설.
토마스 하디의 「환상을 쫓는 여인」:사랑은 육욕과 환상이라는 양쪽 날개로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와 같다. 이 두 날개 중 어느 것이 없어도 사랑이라는 이름의 새는 온전하게 날지 못한다. 불구의 사랑이 빚어내는 엉뚱한 비극의 이야기.
바실리 악쇼노프의 「달로 가는 도중에」:싱싱하게 형상화된 사랑의 양면성. 우연히 알게 된 여인에게 이끌리어 순수의 절정을 경험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알퐁스 도데의 「별」:햇볕 쨍쨍한 가을날 아침, 대입검정고시생이었던 이문열을 신열에 들뜨게 한 책. 멀고 잡을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사랑을 맑고 깨끗하게 그려낸 감동적인 소설.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치정(痴情), 혹은 흉기(凶器) 같은 사랑.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질 수 있는 온갖 기괴미와 추악미를 담고 있는 소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서정가」:곱고 애절한 사랑의 輓詞. 절묘하고 단아하게 그려진 영혼들간의 순수한 고백.
스탕달의 「바니나 바니니」:다른 가치와의 충돌로 비극적이 되고만 사랑의 이야기. 일평생 열정적으로 사랑을 추구했으면서도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었던 스탕달식 사실주의가 그대로 녹아든 작품.
육탈이 되어 심오한 웃음을 짓는 듯한 해골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그곳에 그저 서 있었을 뿐이었다. 분명히 남자는 한때 포옹의 자세를 취한채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 사랑보다 오래 계속되는 길고 긴 잠이 고통에 일그러진 사랑까지도 정복해 버린 잠이 그를 능멸하고 있었다. 잠옷이었던 천조각 아래에 그가 남긴 육체의 흔적이 보였는데, 그것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와 뗄 수 없을 만큼 뒤엉켜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위에, 그리고 옆에 놓여 잇는 베개 위에도 끈질긴 먼지가 고르게 덮여 있었다.
우리는 두번째 베개 위에 누군가 누워 있었던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거기에서 무언가를 들어올렸다. 그 희미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마르고 매캐한 먼지를 콧구멍으로 느끼면서 우리는 몸을 굽힌 채 들여다 보았다. 그것은 철회색을 띤 길다란 머리카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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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물이란 건 이상한 것입니다. 이상하다면, 제가 오늘 밤 당신에게 뭐라고 하고 있는 말도 온통 이상야릇한 것 같습니다만, 생각해 보면 저는 몇천 년 사이의 몇천만의 또 몇억의 사람들이 꿈꾸기도 하고 원하기도 했던 것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써, 저는 마치 사람의 눈물 한 방울과 같은 상징서정시로 이 세상에 태어난 여자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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