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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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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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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1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52쪽 | 360g | 148*210*20mm
ISBN13 9788954609999
ISBN10 8954609996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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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나에게로 돌아가는 시간
도서3팀 박숙경(beblue84@yes24.com)
2016-06-09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어났어야 했던 일’을 겪으며 살고 있을까. 그것은 다분히 결과적인 것이라서 늘 지나고 나서야 ‘일어났어야 했던 일’로 말해진다. 또 그 운명적인 뉘앙스에 기대 자신의 무력함을 기꺼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할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 그 일은, 그 사랑은 그녀에게 왜 일어났어야 하는 일일까.

소녀의 시간, 풀숲에서의 사건 이후 누경 안에서 성장을 멈춘 소녀는 서강주와의 재회 후 마치 주술을 풀어낸 듯 급격하게 자라났다. 단 두 번의 계절을 지나는 동안 누경은 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겪는 듯 시간을 통과했고 그 마음이 더 이상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것도 내뱉지 않는 순간 - 그 일이 끝났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 스스로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 그렇게 그 순간에 자신을 묶어두고 많은 현재의 순간 속에서 과거로서 존재하는 여자가 되는 일이 결과라면, 그 일은 진정 일어났어야 했다고 할 수 있을지. 얼마간의 기쁨과 황홀함, 사무친 마음과 또 일부는 불안과 초조, 근심과 걱정으로 점철된 서강주와의 시간이 그 수많은 ‘현재의 누경’을 만들어내고 결국 끝에 이르렀을 때, 그 많은 누경들은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 속에 각기 다른 파편으로만 남는다. 어쩌면 누경이 누누이 강조하는 고유한 리듬이란 결국 그 모든 누경의 파편들이 모두 현재에 도달해 온전히 지금 존재하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등장인물 중 평생 고독하도록 손금에 운명지어진 남자, 나는 기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왜냐하면,난 그 많은 소년들이 남자가 되는 시간들도 참 신기하니까. 그에 비하자면 누경은 참으로 영리하고 이기적인 편이다. 야금야금 시간을 탕진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할 줄 알고, 몇몇의 남자들에게 나쁜년(!) 소리를 들어먹을 줄도 안다. 반면 기현은 그 나이에 속물적이라는 단어에 뒤숭숭해하고, 자기한테 별 감정 없다는(싫다는 것도 아니고!) 여자 앞에서 펑펑 울기도 한다. 그 여자가 딴 남자를 보는데도,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고도 한다. 사랑을 떠맡는 남자. 아마도 많이 고독한 남자.

문득 연애소설이 읽고 싶어서 오래 책장에 꽂아만 뒀던 책을 꺼내 들었던 기대와는 다른, 이 글은 내게 아주 낯선 사랑이야기였다. 소설의 중심이 되는 서강주와의 시간을 사랑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사랑이라기보다, 누경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그건 그저 ‘일어났어야 하는 일’ 일뿐. 하긴, 모든 지나간 사랑 중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인 것이 얼마나 있을까도 싶지만.

일어났어야 할 일을 지나고 정리해야 할 일들과 마음을 제자리에 두는 노력으로, 누경은 말미에 이르러 몸의 고요를 느낀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그 근원이었을 텐데. 주말이면 냉장고를 비우고 욕실을 청소하고 식재료를 다듬는, 그런 삶의 활동을 통해 자신을 닦아내는 기현에게는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니, 역시 사랑의 일은 영역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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