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여행하려는 이들의 로망 중 하나는 ‘맛있는 파스타를 실컷 먹어야지’다. 그렇다. 사실 이탈리아야말로 파스타에 있어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런데 ‘이것’이 종종 어깃장을 놓는다. 바로 우리의 입맛이다. 이탈리아에 눌러앉아 있을 때, 간혹 한국에서 지인이 오거나 해서 대접할 일이 생기면, 내 딴에는 고르고 고른(솔직히 말하면 그냥 맛있고 싼) 파스타집에 데려가곤 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약간의 불평을 담은 말들을 했다.
“찬일아, 이거 너무 짜지 않냐?” 아니면 “으흠, 소스가 너무 적어서 먹겠니, 이거?”였다. 나는 각기 다른 두 입장을 잘 아는 처지로서 당황스러웠다. 그러니까 두 입장이란, 파스타를 만드는 이탈리아 요리사의 입장과 먹는 손님, 정확히 말하면 한국 손님의 입장을 두루 말하는 거다. 맞다. 우리가 그토록 찾던 본토 파스타는 짜다. 이탈리아 요리사들은 음식 맛은 소금에서야말로 나온다고 믿는다. 한식 요리사들이 ‘갖은 양념’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맛의 근원 말이다. 당연히 짜다. 한국에 오는 대부분의 외국 요리사들은 한국인의 소금 간 맞추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한국 사람이 싱겁게 먹는 것도 아니다. 소금의 총 섭취량은 만만치 않은데, 문제는 우리가 대부분의 외국 음식과는 달리 국물과 김치에서 소금을 섭취한다는 것이다. 국물에는 상상 외로 소금이 많이 들어가지만 혀에 닿는 소금 간은 그다지 짜지 않다. 아마도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국물을 많이 마시는 민족일 것이다. --- 「basic 6 파스타 소스에 관한 딜레마」중에서
로마 유학생들 사이에 전설처럼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 유학생이 로마 역전 뒤편의 허름한 파스타집에 우연히 들렀다. 그는 그 파스타집 벽에 붙어 있는 글귀가 특이해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이윽고 크게 웃고 말았다.
‘No Pickle’.
로마 역전을 떠도는 일본과 한국, 미국 배낭여행객들이 이 파스타집에 들러 한 그릇의 파스타를 먹는다. 그들이 하나같이 피클을 찾자 너무도 귀찮아진 식당 측에서 아예 글을 써서 붙인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도 이탈리아 전역의 식당에서는 피클을 찾는 여행객들과 식당 직원들의 난감한 대화가 이어질 것이다.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는 여행객 주의 사항이 공지된다. 소매치기나 여권 사기범을 조심하라는 뻔한 내용들이다. 부탁건대, 이탈리아 식당에서 피클을 찾지 말라는 주의 사항도 좀 올려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런 게 바로 ‘생활밀착형’ 행정 아니냔 말씀이다. --- 「basic 2 피클은 없다니까, 글쎄」중에서
이 많은 파스타 가운데 ‘당신이 본 것 중 최고로 독특하고 별난 파스타는 뭐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해도 수십 가지는 될 것 같다. 초콜릿을 넣은 파스타도 떠오른다. 그중 우리가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는 별난 파스타는 오징어 먹물 파스타다.
그렇지만 오징어 먹물 파스타는 정말 까다로운 녀석이다. 우선 먹물을 채취하는 과정이 상당히 까다롭다. 오징어(특히 한치나 갑오징어 종류)의 배를 따면 작고 기다란 먹물주머니가 나온다. 그걸 조심스럽게 뜯어내어 기름에 절여 보관해야 한다. 잘못 보관하면 비린내가 나서 먹지 못한다. 파스타 1인분을 하려면 서너 마리의 오징어가 필요하다. 특히 아주 ‘싱싱한’ 놈이어야 한다. 그물로 잡아 냉동한 것이나 선도가 떨어지는 녀석은 이 먹물주머니가 뭉개져서 흔적이 없다.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요리하는 과정도 단순하지만 까다로운 수고가 있어야 한다. 먹물을 잘 지져서 오일에 풀어 줘야 하고, 재빨리 파스타를 볶아 내어 고르게 간이 배도록 해야 한다. 팬에서 볶을 때 요리복에 먹물이 튀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으니 이것도 요리사를 긴장시킨다.
마지막으로는 먹는 일이다. 잘못 만들면 비려서 괴로운 맛이 되고, 맛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먹물이 옷에 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수고를 기꺼이 치를 만큼 오징어 먹물 파스타는 맛있다. 바다의 향을 응축한 듯한 진한 풍미는 오래도록 침이 고이게 하고, 오징어 먹물의 어떤 성분은 입안을 조이듯 식욕을 당긴다. --- 「detail 3 오징어 먹물 파스타, 그 미증유의 바다향」중에서
이렇게 다양한 이름 중에 ‘창녀 스파게티’, 즉 스파게티 알라 푸타네스카(spaghetti alla puttanesca)가 가장 충격적인 것 같다. 창녀는 ‘푸타나(puttana)’라고 하는데, 이 파스타가 같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푸타네스카 스파게티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파스타는 시칠리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우선 재료로 시칠리아에서 자주 먹는 안초비와 올리브 따위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파스타의 원조 자리를 놓고 나폴리와 시칠리아 사이에 다툼이 있 는데, 한 이탈리아어 사전은 1961년에 출판된 소설가 라파엘레 라 카프리아(Raffaele La Capria) 작품에 이것이 시라쿠사(Siracusa)의 파스타로 소개된 것을 근거로 시칠리아를 원조로 보고 있다. 시라쿠사는 시칠리아 동부에 있는 옛 그리스 식민 도시 이름이다.
어디가 원조이든 이 파스타가 만들어진 데에는 제법 유쾌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기원이 있을 것 같다. 하고많은 이름 중에 하필 ‘창녀’라니. 나는 그 배경을 이렇게 생각한다. 우선 창녀란 특정 한 명이 아니라 많은 남자를 만난다. 한마디로 ‘이것저것’ 잡탕처럼 섞인 조건을 의미한다. 또 창녀라는 단어에는 싸구려, 변변찮다는 뉘앙스가 있다. 존중받지 못한다는 의미도 있다. 푸타네스카 스파게티에는 워낙 많은 재료가, 그것도 ‘싸구려’가 들어간다. 물론 이탈리아 현지 가격 기준이다. 한국에서 안초비가 얼마나 비싼가. 어찌 되었든 이런 이미지의 조합이 바로 푸타네스카, 즉 매춘부의 파스타라는 남우세스러운 이름을 갖게 한 것은 틀림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