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복흥현 내에서 가장 초라하지만, 집의 안팎은 그 어느 집보다 깔끔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었다. 그로 미루어 안주인이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정면에 있는 제단(祭壇)이었다. 제사상에는 뚜껑이 덮인 밥 두 그릇과 몇 가지 소채반찬이 놓여 있었다. 그것 역시 몹시 깔끔해서 정성이 깃들어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제단에는 탁향로(卓香爐)가 놓여 있고 그 앞쪽에는 두 개의 위패(位牌)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명랑! 저기…….” 그때 백설이 크게 놀란 얼굴로 제단을 가리켰다. 그녀가 굳이 일깨워 주지 않아도 소청명 역시 그것을 보면서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그녀가 가리키고 있고 또 소청명이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는 것은 제단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위패였다. 위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亡婦碧波孺人天上玉女靈駕- -亡兒碧波孺人玉女之女靈駕-
천상옥녀 즉 소청명의 아내 백지옥의 위패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위패는 백지옥의 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을 적은 사람은 두 사람의 본향(本鄕)을 모르기 때문에 그녀들이 벽파장에서 살았었다는 이유로 ‘벽파유인’이라고 적은 듯했다. 소청명의 시선이 위패 앞에 놓인 조그만 패로 향했다. 그것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누군지를 나타내는 패였다.
-記付李此浪伏爲-
소청명은 흠칫 표정이 변했다. ‘이차랑?’ 그렇다. 백지옥과 딸 소상의 제사를 지내고 있는 제주(祭主)는 다름 아닌 이차랑이었던 것이다. ‘그자가 무엇 때문에?’ 알 수 없는 의문이 먹구름처럼 피어났다. 천화소희는 무림평위단 복흥분당주 이차랑이 백지옥과 소상이 함께 함장된 봉분을 파헤치고 백지옥의 인피를 벗겼으며 그녀들의 입에 물려 있던 두 개의 피독주를 탈취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소청명이 보고 있는 광경은 무덤을 파헤쳐서 욕심을 채운 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절대 아니었다. 그런 악독한 심성을 갖고 있는 자가 어떻게 억울하게 죽은 망자의 넋을 달래 주는 제사를 지내 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제사상에는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을 밥과 반찬들까지 놓여 있지 않은가. “명랑, 이차랑은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지켜보고 있던 백설이 시선을 제단에서 떼지 않은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소청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 하나만 보고 이차랑이라는 자를 속단할 수는 없었다. 그때 소청명은 집 밖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한 팔로 백설의 허리를 안는 즉시 미끄러지듯이 제단 뒤편에 세워져 있는 낡은 병풍 뒤로 몸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