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인호의 귓전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묘한 형태의 무처럼 생긴 식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웅덩이 같은 곳에 홀로 자생하고 있는 것이 순간 인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인호는 늘 물고기로만 배를 채워 안 그래도 물고기라면 질릴 대로 질려 있던 터라 그것을 뿌리까지 뽑아 입 안으로 가져갔다. 입 안에 넣자 달콤한 즙이 흘러나왔고 인호는 그것을 단숨에 먹어 치웠다. “쩝, 더 있으면 좋았을걸……. 흐흑!” 헌데 일 각쯤 지났을까. 갑자기 뱃속에 불이 일어난 듯 뜨거워졌고, 그 열기가 주는 고통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속을 불로 지지는 것만 같았다. “흐윽, 빌어먹을……. 독초란 말인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가? 으윽!” 뜨거운 뱃속을 식힐 마음에 식물이 자라던 웅덩이에 입을 가져가 그 물을 모조리 마셔 버렸다. 그러자 뜨겁게 속을 태우던 불길이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헌데 이번에는 다시 극한의 냉기가 몸속에서 일어나 내부를 꽁꽁 얼릴 듯한 추위가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냉기는 그토록 차갑게 느껴졌던 동굴 속 연못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인호의 몸은 붉게 변했다 푸르게 변했다를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했다. “하악…, 이 고통을… 흐윽…….” 인호는 고통을 이겨 내려 이혼대법의 신공을 운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의식을 잃어버렸다. 인호가 의식이 없는 동안 그의 몸은 열기로 한 번 그리고 다시 한기로 한 번, 뱀이 허물을 벗듯 일곱 번의 껍질을 벗은 후에야 진정되었다. 자신이 먹은 물이 백 년에 한 방울이 맺혀 떨어지는 미타성수(彌陀聖水)이고, 그 중간에 자라고 있던 것이 만년하수오라는 사실을 인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그는 지금 오기조원의 경지를 넘어서 꿈에나 그릴 법한 내공의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삼주야가 흐른 후 인호는 눈을 떴다. 음마공자의 진전을 잇고 난 후 어느 정도 밝게 보이던 동굴 안이 이제는 대낮처럼 환하게 보였다. 귀를 기울이니 자연의 소리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들리는 것 같았다. 심지어 연못 안 물고기들의 지느러미짓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있는 것이 아닌가? 연못에 비친 얼굴은 자신이 봐도 넋이 나갈 정도로 변해 있었다. 음마공자 설운악은 미안공을 익혔다. 인호는 음마공자의 모든 무공을 몸에 가지고는 있었으나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이번 기연으로 그게 가능해지자 인호의 얼굴이 음마공자의 젊었을 때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인호는 그런 사실까지는 몰랐으나 자신의 몸에 무언가 변화가 있었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이혼대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아무런 막힘없이 원활하게 흘렀다. 그렇게도 요원하게 여겨지던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그려졌고, 어느새 그는 조양봉 아래에 자리한 천험의 절벽 앞에 서 있었다. 자신이 갇혀 있던 지긋지긋한 동굴의 틈이 발 아래에 작게 나 있었다. “푸하하하! 노인네, 거짓말은 아니었군요. 노인네 소원대로 이 세상에 노인네의 이름을 떨쳐 드리리다.” 이백여 장이나 되는 눈앞의 절벽은 더 이상 그에게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았다. 몇 번의 도약으로 절벽 위로 올라간 후 발아래 보이는 세상을 향해 광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