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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반짝이는 동안에
eBook

멀리서 반짝이는 동안에

: 날_안아_주었던_바람의_기억들

[ 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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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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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 PC(Mac)
파일/용량 PDF(DRM) | 76.65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86쪽?
ISBN13 9788925584461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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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여행 노트는 어떤 여행 노트보다 꼼꼼한 것과 더불어 수많은 여행자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나이가 드니 5분만 지나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저씨가 좀 더 기억하기 쉽도록 내 이름과 나이 옆에 ‘카와이 걸(귀여운 소녀)’이라고 적으니 목을 뒤로 젖히며 껄껄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싱그러운 청춘이다. 아저씨는 말했다. 이제 내 삶의 할 몫을 다했으니 늙어 죽을 때까지 여행할 거라고. 이 배낭이 무거워서 못 움직일 때까지 여행할 거라고. 일흔다섯, 나의 청춘은 이제사 시작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 p.97

우리는 생각했다. 귀찮다고 미루기에 이 도시는 아까울 만큼이나 빛나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급하게 비운 가슴일지라도 오늘 또한 아름다운 이 모습이 오롯하게 담긴다는 것을. 낯선 언어의 지저귐은 우리의 마음을 늘 들뜨게 한다는 것을. 오늘 바람에 섞여 들어오는 달과 별의 냄새는 딱 오늘뿐이라는 것을.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망울이 우리의 여행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 p.131 오래된 여행, 여행의 태도에 관하여

숨어 있는 곳이라는 오묘한 이름을 가진 오르차에서 현유가 황급이 나를 부른다. 오르차에 있는 낡은 카페 간판을 가리키며, 누나가 말하는 카페에 딱 걸맞은 이름을 찾았다고.
‘문라이트 카페’
항상 어둠이 가득 내려 있는 조용한 오르차의 한줄기 달빛마냥 어여쁜 이름이었다. 현유에게 약속한다. 아마도 스물아홉의 여름쯤에는 오르차의 향기를 가득 담은 예쁜 공간을 만들겠다고. 현유 네가, 언제든 숨어들었던 열아홉의 인도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선물하겠다고.
--- p.180 문라이트 카페 중에서

내 눈물을 보고, 릭샤왈라 아저씨가 고돌리아로 향하는 발을 잠시 멈추고 나를 달랜다. 낡은 모자를 씌워주며, 짧은 영어로 나를 달래며. 아저씨, 행복해서 우는 거예요. 고마워서 우는 거예요. 아저씨는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길가에 릭샤를 세우고 외친다. “스페셜 싸비스!” 그리곤 씨익 웃은 채 내 배낭을 들쳐 메고, 내가 머물 숙소가 있는 먼 곳까지 작디작은 몸으로 골목골목 헤쳐나간다. 나에게 작디작은 위안의 말을 건네면서. 너는 잘 하고 있다고, 네가 지금 인도에 있는 것은 꿈이 아니라고, 그렇게 몸소 말해주면서.
--- p.188 네가 지금 인도에 있는 것은 꿈이 아니야 중에서

게스트하우스를 떠나는 날이 왔다. 쿠미코 상은 언제 다시 올 거냐며 물었고 나는 곧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쿠미코 상이 나를 안아주기 전에 먼저 그녀에게 안겼다. 그녀의 꼽꼽한 체취가 훅 하고 들어왔다. 할머니 냄새가 났다. 품은 넓었고 또 생각했던 것만큼 따뜻했다. 어쩐지 이 품 안에서는 모든 게 용서될 것만 같은, 가득 안기고 싶은 품이었다. 40년째 수많은 여행자를 맞아주는 쿠미코 상은 어쩌면 내가 다시 돌아갈 때쯤이면 다른 여행자에 치여 나를 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가끔 어쩐지 위로받고 싶은 밤이면 쿠미코 상의 사진을 꺼내어 본다. 누워 있는 그녀의 미소를 보며 꿉꿉하고 포근했던 그 향기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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