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잘 지어서 먹고, 남는 것을 팔아서 저축해 두었다가 그 돈으로 밭 사고, 그리고 선비를 아내로 맞이해서, 아들딸 낳아 가면서 재미나게 살아 보겠다고 그는 몇 번이나 생각해 보았던가! 그는 자기의 이러한 어리석었던 공상을 회상하며 픽 웃어 버렸다. 따라서 희망에 불타던 그의 씩씩한 눈망울은 비웃음과 저주로 변하는 것을 확실히 볼 수가 있었다. --- p.158
단 5전만 가졌으면 이렇게 배는 고프지 않으련만…… 5전! 5전! 그의 눈에는 5전짜리 백동전이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 10전보다도 좀 작은 듯한, 그리고 좀 얇은 듯한 그 5전! 그것이 없어서 자기는 이렇게 배를 곯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휘돌아보았다. 행여나 그 남녀가 빙수 값을 치르다가 그 5전을 떨어치지 않았는가? 하여 보고 또 보나 아무것도 발견치 못하였다. (.…) 앞이 아뜩해지며 휭 잡아 돌리는 듯하여 그는 의자를 붙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는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지 돈 5전만 주면서 너 여기서 저 아래까지 뛰어내려라 하면 그는 서슴지 않고 뛰어내릴 것 같았다. --- p.259~260
“선비야! 그런 것을 몰라서는 안 된다. 저 봐라, 지금 야근까지 시키면서도 우리들에게 안남미 밥만 먹이고, 저금이니 저축이니 하는 그럴듯한 수작을 하야 우리들을 속여서 돈 한 푼 우리 손에 쥐어 보지 못하게 하고 죽도록 우리들을 일만 시키자는 것이란다. 여공의 장래를 잘 지도하기 위하야 외출을 불허한다는 둥, 일용품을 공장에서 저가로 배급한다는 둥, 전혀 자기들의 이익을 표준으로 하고 세운 규칙이란다. 원유회를 한다느니, 야학을 한다느니, 또 몸을 튼튼케 하기 위하야 운동을 시킨다는 것도, 그 이상 무엇을 더 빼앗기 위하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작이란다…….” --- p.312
여기까지 생각하니, 이때껏 의문에 부쳤던 그의 아버지의 죽음이 얼핏 떠오른다. 옳다! 서분 할멈의 말이 맞았다! 그는 무의식간에 벌떡 일어났다. 그때 손끝이 몹시 아파 왔다. 그래서 손끝을 볼에 대며 덕호를 겨우 벗어난 자신은, 또 그보다 더 무서운 인간들에게 붙들려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며, 오늘의 선비는 옛날의 선비가 아니다……라고 부르짖고 싶었다.
--- p.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