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근교 촌락인 ‘꾸일로크’에서 출생. 1947~1957까지 이북에서[주로 평양-만경대] 부모들과 함께 살다가 6ㆍ25전쟁(1950-1953) 때는 중국의 할빈시에서 살았고, 1957년에 부모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로 이주. 1972년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종합대학 산수학과와 경제대의 경제정보가공학과를 졸업하고, 컴퓨터 프로그램 근무자로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주요산업체에서 근무했다. 1994~2000년 우즈-대우 합작 회사 번역 및 통역원으로 근무했고, 2001년부터 한국인들과 개인 사업을 하고 있음. 2006년에 고려인의 중앙 아시아 이주 70년을 기념하여 『사진으로 이어 가는 추억』이라는 사진집을 발표하였다.
1946년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근교 촌락인 ‘꾸일로크’에서 출생. 출생한 해에 부모와 함께 북한으로 가서 12세 까지 살았고, 당시 소련한인을 위해 평양에 개교한 학교에 들어가 러시아어를 학습. 6ㆍ25전쟁 동안에는 중국에서 살았고, 15세 때에 타쉬켄트로 돌아와 석공ㆍ미장공ㆍ판석공 등 건설노동자로 일했음. 그 사이에 야간학교를 마치고 종합기술학교 산업 및 민간 건축공학과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1년 후 군에 입대, 그곳에서 지역 군사 신문에 기사를 쓰기도 했음. 제대 후 타쉬켄트 국립대학 언론학부에서 공부했고, 이후 학생 및 청년 신문사에서 일해 책임비서까지 승진. 1979년 한국어로 발행되는 ‘레닌기치’ 신문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이후 타쉬켄트 통신사의 소장이 되었음. 타쉬켄트 국립대학에서 언론학을 강의했고, 사범대학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공로언론인’의 칭호를 받았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는 한국문화원 설립에 적극 참여하였다.
1957년 충남 태안 출생. 문학박사. 해군사관학교 교수, 경남대학교 교수 등 역임. 현재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겸 한국문예연구소 소장. 인문대학장 역임. 미 UCLA에서 비교문학과 한인 이민문학을 연구. 제2회 한국시조학술상, 제15회 도남국문학상, 제1회 성산학술상 등 수상. 2011ㆍ2012년 숭실대 연구업적 Best SFP(Soongsil Fellowship Professor). 2008년부터 고려인 문학의 연구를 위해 러시아ㆍ카자흐스탄ㆍ우즈베키스탄ㆍ키르기즈스탄ㆍ벨라루스 등을 두루 여행했다. 『조선조 시문집 서ㆍ발의 연구』, 고려속악가사ㆍ경기체가ㆍ선초악장, 가곡창사의 국문학적 본질, 우리의 옛 노래문학 만횡청류, 봉건시대 민중의 고발문학 거창가, 해방 전만주지역의 우리 시인들과 시문학, 17세기 국문 사행록 죽천행록』, 해방 전 재미한인 이민문학(1~6),연행노정, 그 고난과 깨달음의 길(공), 주해 을병연행록(공), 무오연행록(공), 홍길동 이야기와 로터스 버드, 국문 사행록의 미학, 조선조 악장의 문예미학, 제주도 해녀 노 젓는 소리의 본토 전승양상에 관한 조사 연구(공), 한국고전비평론자료집(공역), 연행록 연구총서(1~10)』(공편), 고전시가의 변이와 지속, 아, 유럽!-그 빛과 그림자를 찾아, 꽁보리밥 만세(수필집), 풀어 읽는 우리 노래문학, 조선통신사 사행록 연구총서(1~13)(공편), 어느 인문학도의 세상읽기(수필집), 베트남의 민간노래(공편역), 고창오씨 문중의 인물들과 정신세계(공), 고전시가와 불교, 아리랑 연구총서 1(공편), 한국 생태문학 연구총서 1(공편)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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