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태어날 때부터 탐욕의 덩어리다. 그 탐욕을 채우기 위해 어릴 때나, 젊을 때나 나는 무수한 죄를 짓고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초로에 접어든 지금도 그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식이 착하게 살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소원이 하늘에 닿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로 하여금 조금씩 선과 악을 구별하고 악행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했으리라. 천벌이란 그렇게 어머니들의 간절함이 모여서 내리는 모성의 벌인지도 모르겠다.
---「유년의 바다」중에서
나의 생멸(生滅)은 거대한 우주 속에서 찰나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지극히 미미하고 사소한 진동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몸을 구성하는 100조 개에 이르는 세포 하나하나의 생멸이 나의 생멸을 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 전체 생멸의 일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인간은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존재 아닌가. 죽음이 주는 슬픔의 무게만큼 삶은 소중할 것이다. 인간개체들의 생사는 우주 속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미미한 물질적 부피와는 비교할 바 없이 더 큰 의미가 있는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등화관제훈련이 있던 밤」중에서
먹고, 싸고, 일하고, 자는 일로 대표되는 일상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고, 무한히 반복되어 지겨우며,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어 살아 있는 한 벗어날 길이 없다. 인간의 삶은 일상의 연속이다. 한평생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이 일상이다. 따라서 삶을 잘 살아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얼마 되지 않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잘 살아가는 데 있다. 일상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고 무언가 특별한 것만 찾는 일은 어리석어 보인다. 성경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쳤다. 일상을 감사하라는 말이니, 하늘 아래 어떤 가르침이 그보다 더 크겠는가.
---「[보이후드]」중에서
인간은 과거를 사는 존재다. 모든 경험은 과거이며, 그 경험에 대한 기억만 현재라는 순간순간에 남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삶은 머릿속에 기억이라는 과거의 지층을 쌓으면서 시간의 흐름을 통과한다. 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로병사의 과정을 통과해간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시간은 나를 소멸하게 하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다. 그러나 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시간의 지층을 내 머릿속에 쌓으면서 흘러간다. 머릿속에 쌓인 기억의 총합이 내 삶이고, 나다. 기억이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내 세계관을 형성하며, 내 판단을 좌우한다.
---「시간과 기억」중에서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난 후 만나게 되는 것은 불이문이다. 불이문은 사찰의 본당에 들어가는 마지막 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찰의 진짜 대문인 셈이다. 불이란 부처와 중생, 진리와 무명無明, 생과 사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다. 불이문을 넘어서면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가 펼쳐지는데, 그 부처의 세계가 문 바깥, 즉 번뇌와 망상의 세간世間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중생은 진리를 찾아 불이문을 넘지만, 세간에서 찾지 못한 진리가 불이문 너머에 있을 리 없다.
---「아내 손을 잡고 통도사 불이문을 지나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