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사랑이라는 눈사태
사랑과 이별 사이에 삶의 모든 절차가 들어있다. 우리는 태어나고 사랑하고 죽는다. 영원히 이별한다. 청춘은 그런 삶의 절차를 압축적으로, 혹독하게 겪는 시절이다. 사랑의 설렘과 이별의 씁쓸함을 노래한 시를 모아 작가의 촌철 같은 에세이로 풀어내고 녹인다.
빗방울 하나가/창틀에 터억/걸터 앉는다/잠시 나의 집이/휘청-한다(강은교, [빗방울 하나가1])
사랑이란 일종의 존재론적 사태다. 사랑에 빠지면 존재는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이 일어난다. 너는 더 이상 어제의 네가 아니고, 나는 더 이상 어제의 내가 아니다. 사랑의 사소한 시작이 만들어 내는 신비로운 사태. 그 신비한 처음 사랑에 마음이 후들거렸던 순간이, 당신과 내게도 있었다. --- p.38
_사랑의 테마 읽기. 청춘에 앓는 사랑의 과정을 건축학적으로 비유, 분류하고 해석해 사랑을 통찰한다.
기초공사(‘바람도 없는데/창문 앞/낙엽이 흔들리네요/(……)’(김용택, [바람])
이유는 모르겠는데, 마음이 요동친다. 사랑이란 까닭 없는 속수무책이다.(……)당신이 웃었다. 됐다.
완공(‘사랑한다는 것은/꽃다발을 바치는 것/(……)’(고영민, [꽃다발])
사랑이 완공되면 황홀해라. 온몸이 꽃다발이 된다. 그 황홀함을 매일매일 바치고 싶어진다.
붕괴, 그 후(‘우리가 두 마리 어지러운 짐승으로 불탔을지라도/(……)/한 짐승은 사람이 되어 떠나고/(……)’ 첫사랑은 대개 이별을 동반한다. 그리움으로 굳어버린 그 첫사랑을 어찌 눈물 없이 추억할까.
_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 시를 읽는 시간은 반복되는 일상에 주어지는 달콤한 휴식이다. 오로지 나의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오직 내 것인 시간, 그 사색의 시간이 시 안에 오롯이 펼쳐진다.
2장. 꿈틀, 꿈의 틀
청춘은 꿈의 틀을 완성해가는 시기이다. 그러나 오늘의 청춘은 꿈의 틀을 떠올려볼 겨를조차 없이 알량한 취업문을 두드려야 한다. 꿈보다는 밥이 다급한 세대가 요즘의 청춘인 것이다. 꿈을 잃어버린 청춘이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여기에 묶인 시는 오로지 삶과 꿈을 고뇌하는 청춘을 위한 노래이다.
밥을 먹고 쓰는 것/밥을 먹기 위해 쓰는 것/한 줄씩 쓸 때마다 한숨 나는 것/(……)(오은, [이력서])
이력서의 표준적인 거짓말이란 이런 것. 나는 잘났고, 예의 바르다는 사실을 태연하게 적는 것. 최대한 은밀하고 겸손하게 내 자랑을 늘어놓는 것. …아, 이 땅의 청춘은 가련해라. 이력서 위에서, 청춘은 독자적인 빛을 잃고 밥벌이를 위한 도구로 추락한다. …이 땅의 청년들은 누가 더 둥글둥글하고 더 예의 바른지 경쟁하고 있다. 아, 이력서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어야 한다. --- p. 104
_희망의 테마 읽기. 청춘은 희망의 계절이다. 정해진 것이 없으므로, 아무렇게나 희망해도 좋을 시절이 청춘이다. 온통 없는 것뿐인 젊음의 때, 희망 하나만은 가질 수 있기에 청춘은 당당할 수 있다.
‘남들은 절망이 외롭다고 말하지만/나는 희망이 더 외로운 것 같아(……)/희망과 나,/희망은 종신형이다/(……)(김승희, [희망이 외롭다1])
삶에는 늘 절망과 희망의 두 가지 표정이 있다. 청춘에게 삶이란 절망의 순간들이 많겠지만, 그 절망을 희망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삶은 존속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시 절망할 줄 알면서도 움켜쥐는 희망은 얼마나 외로운가. 희망은 없는데 기어이 희망해야 하는 청춘에게 희망은 무섭도록 외로운 순간들이다.
_좋은 시집을 선택하라. 저자는 시집을 선택할 때 막막하다면 ‘시인의 말’을 펼쳐보길 권한다.
‘(……)침묵에도 피가 고여 있다’(강정, [키스])와 같이 시적으로 시집의 속살을 예고하거나,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쓰고 싶었습니다’(김언희, [요즘 우울하십니까?])같은 시인의 각오가 느껴지는 다짐형, 자신의 시가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알려주는 해설형의 ‘시인의 말’은 시 선택의 나침반이 된다.
3장. 산 증거 - 생로병사의 노래들
청춘의 시절만큼 죽음을 고민하는 시기가 또 있을까. 삶의 지독한 욕망에 죽고 싶은 역설적인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더구나 늙은 부모의 쪼그라든 모습이 문득 가슴을 때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삶은 좀 더 진지하게, 죽음은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청춘이라는 당신에게.
옛날부터 우리 엄마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흰머리 이고 저만큼 가신 당신을/
서둘러 따라가 동무해주지 못하는 그것이 오늘 슬펐다(김주대, [엄마])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위태로운 순간에 가장 먼저 찾는 게 엄마의 이름이다.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생전 이런 글을 적었다. “이 나이에, 머지않아 증손자 볼 나이에 지치거나 상처받아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이불 속에서 몸을 태아처럼 작고 불쌍하게 오그리고 엄마, 엄마 나 좀 어떻게 해 달라고 서럽게 엄마를 찾아 훌쩍인다면 누가 믿을까.” …우리는 서둘러 엄마를 따라가 동무해 주고 싶지만, 엄마는 그보다 먼저 걸어가 자식들의 오는 길을 보살피고 있다. --- p.155
_죽음의 테마 읽기.
죽음 하나.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문인수, [하관])
시인의 어머니가 흙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를 흙에 심었다. 그러나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 꽃으로도, 들풀로도, 그 무엇으로도 이 고통스런 세상에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야속하지만 이해가 된다. 어머니의 죽음은 고통스런 삶이 마침내 끝났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_좋은 시란 무엇인가. 시론에는 정답이 없다. 좋은 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저자는 ‘오로지 나와 단둘이 있는 시간의 흔적, 나의 내면을 성찰하고 정신세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시’라고 명제한다.
4장. 시인공화국 사람들 -청춘에게 권하는 5인의 시인 이야기
인생의 시작, 청춘의 시절에 한 번쯤은 꼭 만나야 할 한국 시단의 대표적 5인(서정주, 서정태, 장석남, 안도현, 강연호)의 시인을 그 대표작들과 함께 소개한다.
한밤/물미역 씻는 소리는/어느 푸른 동공瞳孔을 돌아나온 메아리 같네/간장에 설탕을 넣고 젓는 소리는 또/그 메아리를 따라나온 젖먹이 같네/(……)(장석남, [물미역 씻던 손])
누가 있어 저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서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구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소리에 제 마음을 전부 내어 주는 것이다. 시인은 지금 건너편에서 들리는 자그마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밤은 깊어 모두들 잠들었는데, 홀로 미역을 씻는 손이 시인의 마음을 건드린다. ‘울음 세 개 간직한 그 손’ 누가 있어 그 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