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에 정신이 팔려, 그때까지도 천 조각에 싸여 있던 거무죽죽한 작은 종이 두루마리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펼쳐보니 만족스럽게도 옛 검사관의 필적으로 전체 사건이 완성도 있게 설명되어 있었다. 대판 양지 몇 장에는 우리 조상들이 보기에 상당히 주목할 만한 인물이었던 것 같은 헤스터 프린이라는 사람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 여자는 매사추세츠 초기, 17세기 말에 살았던 사람이었다. 검사관 퓨 씨는 당시 노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노인들은 자기들이 젊었을 때 그 여인은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 있었지만, 결코 노쇠하지 않았고 당당하고 근엄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는 일종의 자원봉사 간호사로 온 나라를 돌아다녔고, 좋은 일이라면 뭐든지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문제, 특히 마음의 문제를 맡아 조언하는 일을 했으며, 그런 성향을 갖춘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듯 많은 사람들에게 천사로 공경받았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녀가 불청객이자 성가신 존재로 보였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원고를 좀 더 살펴보다 나는 이 놀라운 여인이 했던 다른 일들과 그녀가 겪었던 고난에 관한 기록을 발견했다. 독자들은 그 대부분을 『주홍 글자』라는 제목을 단 이야기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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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엄마, 그러니까 젊은 여인은 군중 앞에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반사적으로 아기를 품에 바짝 껴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모성애에 따른 반사작용이라기보다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옷에 단단히 수놓인 채 붙어 있는 어떤 표식을 감추고 싶어서였으리라. 하지만 지혜롭게도 이내 수치심의 표식을 또 다른 표식으로 가리는 건 소용없는 짓이라고 판단했는지, 아기를 팔에 안은 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도도한 미소를 띠고는 주민들과 이웃을 향해 당당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옷 가슴팍에는 고운 주홍빛 천에 둘레를 금실로 정성스레 수놓아 환상적으로 장식한 글자 ‘A’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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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 없는 수많은 눈길이 자신을 옭아매고, 그 육중한 무게가 가슴 위로 쏟아지는 가운데, 가엾은 죄인은 여자로서 낼 수 있는 힘을 최대한 끌어내 견뎌내고 있었다. 격정적이고 열정적인 천성을 지닌 그녀는 갖은 모욕감을 안기는, 가시나 독이 묻은 비수처럼 꽂히는 군중의 오만에 용기 내어 맞서기로 했다. 그러나 군중의 엄숙한 분위기에는 그보다 더 끔찍한 무엇이 깃들어 있었기에, 차라리 그 모든 엄한 얼굴들이 그녀를 향해 비난을 퍼붓는 모습으로 일그러지기를 바랐다. 만약 사내들과 아낙네들,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아이들, 모든 군중이 각자 자기 역할에 맞게 우레와 같은 비웃음을 쏟아냈다면, 헤스터 프린은 씁쓸하고 오만한 비웃음으로 그에 답했으리라. 하지만 납덩이같이 무거운 고통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그녀는, 폐가 터져라 비명을 내지르며 단상에서 바닥으로 몸을 내던져야 할 것 같은, 그게 아니면 당장에라도 미쳐버릴 것 같은 감정에 문득문득 빠졌다.
--- p.92
그러나 이렇게 홀로 감옥 문을 걸어 나오는 지금부터 일상이 시작되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본성에 있는 평범한 힘으로 일상을 견디며 살아가거나 그 아래 깔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현재의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더는 미래의 힘을 끌어다 쓸 수가 없었다. 내일은 내일대로 나름의 시련이 있을 테고,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도 각각 나름대로 시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련이 지금과 전혀 다를 바 없을지라도 견뎌내기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 것이다. 시련은 머나먼 미래에까지 똑같은 무게로 그녀를 짓누르며 꾸준히 이어져 그녀와 함께할 뿐 결코 내려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날이 가고 해가 가면서 산더미 같은 치욕 위에 괴로움을 쌓아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한 인간으로서의 개성을 잃고, 목사와 도덕군자들이 손가락질하는 보편적 상징이자 지조 없는 여자, 죄 많은 정열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어리고 순결한 이들은,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주홍 글자를 지닌 그녀를, 정직한 부모의 자식인 그녀를, 장차 여인으로 성장할 아기의 어미인 그녀를, 한때는 순수했던 그녀를, 죄의 모습으로, 죄의 육신으로, 죄의 실체로 보며 교훈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내세까지 그녀가 짊어지고 가야 할 치욕이 그녀의 무덤 위에 세워질 유일한 비석이 될 것이다.
--- p.125
세상은 카인의 이마에 찍힌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낙인을 여인의 가슴에 달아주었지만, 타고난 기질이 강하고 보기 드문 능력을 지닌 그녀를 완전히 내쳐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회와 교류하는 내내 그녀가 자신도 거기 속해 있다고 느낄 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은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심지어 침묵으로도 그녀가 추방되었으며 마치 그녀가 다른 세계에 살거나 나머지 인간들과는 다른 기관과 감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지독하게 외로운 처지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내거나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유령이 자신에게 익숙한 난롯가를 다시 찾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을 보거나 느끼지 못하듯, 그래서 그 가정의 기쁨에 더 이상 미소 짓지도 못하고 혈육의 슬픔을 함께 나누지도 못하듯, 혹은 그런 금지된 동정을 베푸는 데 성공하기라도 했다간 공포스럽고 끔찍한 혐오만 일으키게 되듯, 그녀는 세상 사람들의 삶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듯했지만 사실은 사람들 곁에 있었다.
--- p.134
이렇듯 목사는 육체는 질병에 고통받고 정신적으로는 어떤 사악한 문제로 고문당하며 치명적인 적의 계략에 빠져 있으면서도, 성직자로서 임무를 행하는 데 있어서는 엄청난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사실 그런 명성은 상당 부분이 슬픔 에 얻게 된 것이었다. 타고난 지적 능력, 도덕적 감수성, 감정을 느끼고 교류하는 능력은, 매일 겪는 가책과 고뇌로 기이할 만큼 활발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p.224
그들은 목사가 내뱉는 자기비판 속에 숨어 있는 치명적인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신실하신 우리 젊은 목사님.” 사람들은 말했다. “과연 지상의 성자로군! 저 순수한 영혼에서도 저리 깊은 죄를 포착하시니 우리들의 영혼에서는 얼마나 끔찍한 모습을 보실까!” 목사는 ? 사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하지만 결국 교묘한 위선자가 아니었던가! ? 자신의 모호한 고백이 어떻게 비칠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속이려 했지만 거기서 순간적인 안도감도 얻지 못했고, 또 다른 죄와 스스로도 인정하는 수치심만 얻었을 뿐이었다. 확고한 진실을 고백했으면서도, 그것을 그보다 더할 수 없는 거짓으로 바꿔버린 셈이다. 하지만 그의 본성은 누구보다 진실을 사랑하고 거짓을 미워했다. 그러니 비참한 자신이 그 무엇보다 혐오스러웠으리라!
--- p.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