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생물은 보이지 않는 이 탑승객과 비슷한 존재다. 면역계를 따돌리는 데 능한 이들이 우리 몸에 몰래 숨어들면 악마 같은 소행이 시작된다. 이들은 우리 몸에 발진, 병소, 통증 등을 일으킨다. 이들은 우리를 안쪽에서부터 파먹어 간다. 우리 몸을 이용해 자기 새끼를 키우거나, 우리의 기력을 떨어뜨리거나, 눈을 멀게 하거나, 중독시키거나, 불구로 만들고 심지어는 우리를 죽이기도 한다. 이들의 영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재주를 숨기고 있는 기생생물이 있다. 그 숨겨져 있던 재주가 어찌나 경탄스러운지, 그것을 연구해서 먹고 사는 과학자들조차 당혹스러워하면서 감탄할 지경이다. P.7
우리의 악몽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사자, 곰, 상어, 무기를 휘두르는 사람 등등이 주를 이루지만,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언제나 기생생물이었다. 중세시대에는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선페스트Bubonic Plaque, 즉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지 몇 세기 만에 아메리카 대륙 토착 원주민의 95퍼센트가 천연두, 홍역, 독감, 그리고 유럽의 침입자와 식민지 개척자들이 가져온 다른 세균으로 몰살당하고 말았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는 세계 1차 대전 동안 참호 속에서 죽어간 군인들의 수보다 많다. 현재 지구에서 가장 치명적인 감염원인 말라리아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악랄한 대량학살자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석기시대 이후로 지구 위를 돌아다녔던 모든 인류 중 절반 정도가 이 질병 때문에 죽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P.15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무어는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기생생물 조작 현상들이 대부분 맨눈으로 확인 가능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숙주가 자기 몸 색깔과 확연히 대비되는 배경색을 띠는 환경을 찾아간다거나, 시선을 끌려고 미친 듯이 돌아다닌다거나, 일반적으로는 잘 가지 않는 장소를 찾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행동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눈치를 챌 수 있기 때문에 기생생물의 다음 숙주가 될 포식자가 이런 행동을 잘 알아차리는 이유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기생생물이 우리의 감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측면에 변화를 주어 숙주를 표적으로 만든다면? 예를 들면 숙주로 하여금 우리 코는 맡을 수 없는 냄새를 남기며 이동하게 하거나,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게 하거나, 우리 눈에는 칙칙한 색으로 보이지만 그 기생충의 다음 숙주의 눈에는 현란한 색으로 보이는 신체부위를 노출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 중에도 포식자를 끌어들이는 표식을 모르는 사이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P.41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대학교의 실리아 셀리아 홀랜드는 이 병원체 연구의 선두주자로, 톡소카라가 야기하는 미묘한 인지장애가 오래도록 간과되어 왔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 기생충과 접촉하게 되는 가장 흔한 이유는 불량한 위생이다. 그럼 점에서 이 기생충 감염에 가장 취약한 연령대는 개나 고양이의 배설물로 오염된 흙이나 모래 놀이통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들이다. 톡소카라의 알은 사람의 몸속에서 유충으로 부화하면 성충으로 자랄 수 없다. 이것은 개나 고양이 숙주의 몸에 들어가야만 성충으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생충의 발달과정은 가장 이동성이 높은 유충 단계에서 억제된다. 이 유충은 내장을 넘어 멀리는 간, 폐, 눈, 그리고 연구가 부족해서 얼마나 자주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뇌까지 돌아다니기도 한다. p.144~145
여기 흰쥐가 두 마리 있다. 한 마리는 보기 좋게 살이 쪘고, 다른 한 마리는 뼈 위로 살가죽만 앙상하게 남았다. 하지만 이 마른 쥐가 먹기는 훨씬 더 많이 먹는다. 이 쥐가 체중이 덜 나가는 이유는 통통한 쥐와 달리 장 속에 미생물이 없기 때문이다. 분해를 도와줄 미생물이 없으면 음식은 대부분 소화되지 않은 채 위장을 통과해 버린다. 이 쥐는 뚱뚱한 쥐보다 먹이를 30% 정도 더 섭취하는데도 지방이 60%나 적다. P.172
커티스는 개발도상국의 위생환경 개선을 위해 일하는 운동가일 뿐만 아니라 자칭 ‘역겨움 학자disgustologist’이기도 하다. 즉, 역겨움의 전문가란 소리다. 그녀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가 이제는 역겨움이란 감정이 기생생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 믿고 있다. ‘으웩’ 소리와 함께 메스꺼움과 두려움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은 역겨움이란 감정 때문에 우리는 구역질이 나는 무언가를 접하면 경악하며 흠칫 놀란다. 그녀의 관점에서 보면 똥이 금기시 된 이유도 바로 그것이 세균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냄새를 싫어하지도 않고, 그것에 대해 즐거운 마음으로 얘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P.232
이들은 임신 여성이 임신 초기에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이 심해진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때는 몸이 태아를 거부하지 않게 하려고 산모의 면역계가 억제돼 있는 시기다. 하지만 그러한 위험 단계를 벗어난 임신말기에는 이런 증상이 사라진다. 페슬러가 다이애나 플레이슈만Diana Fleischman과 공동으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임신 초기에 면역계의 고삐를 죄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이 역겨운 느낌을 상승시킨다고 한다. 이것은 외국인을 향한 부정적인 태도를 고취시키고 식습관도 더 까다롭게 만든다. 8장에서 봤듯이 이 후자의 반응은 임신 여성이 오염이 잘 되는 음식의 섭취를 꺼리게 만들기 위한 적응으로 보인다. 바꿔 말하면 임신 기간 중 감염의 위험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에 이 호르몬 하나가 역겨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두 가지 행동형 방어기제가 개시된다는 것이다.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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