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때문에 많이 늙으셨네요.” 아버지와 아들이 15개월 만에 주고받은 첫 말은 그토록 시시했다. 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아들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친구에게 말하듯 했다. “어이없는 놈! 소주 한잔 할래?” 아들이 형에게 말하듯 대답했다. “좋아요!” ---「소주 한잔 할래?」중에서
저격수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듯한, 에세이와 칼럼과 여행기와 동영상이 짬뽕된, ‘이것이 개 같은 인생이다!’라는 제목의 게시물 밑에 매달린 이 한 마디. ‘정신병원이네.’ ‘정신병원이네’가 붙은 지 3분 만에 붙은 저격수의 답글은 우리말 욕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런 욕을 실제로 듣는다면 그 자리에서 속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저격수와 노동꾼」중에서
“청년도 알았겠지만, 아무나 몸뚱이로 벌어먹는 게 아뇨. 더 늦기 전에 공부허라고요. 내가 벽돌 찍어서 애들 가르치고 집 사고 그랬지만 사람이 헐 짓이 아니거든요. 몸뚱이로 밥 벌어먹는다는 것은 제 살을 깎아 먹고산다는 말이거든요.” ---「벽돌 한 장의 무게」중에서
힘든 일을 잘 겪어내면 행운이 오더라. 행운이 벅차면 여지없이 불행이 오더라. 인생은 새옹지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쨍하고 해 뜰 날’ 그거 한번 해볼게. 자, 박수!” ---「전철의 기타맨」중에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훔쳐갈 게 아무것도 없는 집에 가보면 집을 다 때려 부숴놨어요. 똥까지 싸질러놓고 별 지랄을 다 해놓는다고요. 패물하고 저금통이 집 살린 거지요.” ---「차돌리기」중에서
10여 년간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썼지만, 스스로 글 쓰는 방법을 터득하기는커녕, 고통스럽고 막막함의 정도만 더해가니, ‘절로 잘 쓸 수밖에 없게 된다’가 아니라 ‘써도 써도 발전이 없다’였다. ---「작법을 찾아서」중에서
20년 가까이 가족을 팔아먹은 자는, 어쩐지 부끄러워, 반성도 해보고 변명도 해보고 핑계도 대보고 억지도 부려보고 별짓을 다 했건만, 창피함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더욱 서글픈 것은 앞으로도 쭉 가족을 팔아먹는 자로 살 것이라는 틀림없는 사실이겠다.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내야, 아이야! 고맙고 미안하다.
무협의 세계로 치자면 김종광은 소림과 무당파 같은 정파 협객이 아니다. 그렇다고 녹림 사파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생존생계형 떠돌이 무사다. 그가 싸움을 치르는 상대들은 예측하기 어렵다. 과부, 백수, 찌질이, 막노동꾼 등은 최소 태극 1장의 기초도 없이 김종광과 흙투성이 개싸움을 벌인다. 그렇게 수많은 혈전을 치르다보니 그는 오른손 왼손 구분 없이 잘 쓰게 되었고, 박치기, 고춧가루 뿌리기, 이로 물어뜯기, 어르고 달래기 신공도 자유자재로 펼친다. 그리고 어언지간에 이 떠돌이 무사는 처절하고 의뭉스럽고 배 째고 울컥하게 만드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가전절학을 지니게 되었다. 자, 겁먹은 척 머리를 긁적이다 전광석화처럼 당신의 두 눈을 찔러오는 김종광의 출수를 조심하시라! _정형수(드라마 [다모] [주몽] 작가)
소설가가 소설만 써야 한다면 읽는 사람으로서 우리 참 서운했겠다 싶은 것이 예컨대 이런 ‘산문(散文)’을 마주했을 때이렷다. 그 단어가 흩은 산이 아니라 생생한 날것의 산으로 수렴될 만큼 신선한 숨쉬기로 호흡되는 글줄들일 때 그 귀함을 만나면 신이 나서 실실 웃게도 되니 이를테면 소설가 김종광의 산문을 흡입했을 때이렷다. 이십대 초반부터 보아온 그의 캐릭터는 언제나 쓰는 사람이었다. 만나면 반갑다며 썼냐? 하고 묻고 헤어질 땐 또 보자 하며 써라! 하던 사람. 언제나 주구장창 뭘 그렇게 써댈까 싶은데 그게 유난스럽다기보다 안 썼다, 못 썼어, 하는 날에는 되려 뭔 일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게 만들던 사람. 그래 그 ‘사람’ 얘기를 특히나 맛깔나게 잘 쓰던 소설가 김종광의 첫 산문을 단숨에 읽어나가면서 나는 내가 팔아먹을 내 ‘사람’이 누가 있더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식을 모르고 거짓에 서툴고 솔직함은 알고 털털함에 익숙한 김종광의 산문이 나를 이렇게 관통할 줄이야.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 라니 첫 산문에 다할 제목임도 분명한 듯하다. 재미있고 따뜻하고 감동적인 글을 찾아다닌다는 작가라지만 정작 그도 제 발밑은 어두웠던 모양이다. 보시라, 여기 다 있다! _김민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