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퇴원한 뒤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다. 그리고 나도 조금씩,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누구든 어른이 되어야 했다. 누구든 빨리 괜찮아져야 했다. 엄마는 노력했지만 가끔 무너져 내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서웠지만 엄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아주 조금씩 강해졌다. - 본문 21쪽
“걔네 엄마가 프랑스 사람이라며? 그 애 아빠가 이 건물 2층에서 미술 학원을 한다지 뭐니? 우리 성아는 그 미술 학원에 다니겠다고 벌써부터 난리란다. 걔가 아이돌 그룹의 누구를 그렇게 닮았다며? 반 애들이 아주 난리라던데?” 약국 아주머니도 성아처럼 효동이에게 관심이 많았다. 참 이상하다. 엄마가 동남아 사람이라면 다들 탐탁지 않게 보면서 효동이 엄마가 프랑스 사람이라니까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뭘까? - 본문 23쪽
엄마가 또 웃는다. 아저씨를 보고 엄마가 환하게 웃는다. 엄마랑 아저씨랑 꽤 친해 보인다. 문득 둘이 차를 마신 게 오늘이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별로다. 아니, 아주 나쁘다. 엄마가 저렇게 환하게 웃은 게 얼마 만일까? 내가 100점짜리 시험지를 가져다주어도 저렇게 웃지 않았는데……. -본문 29쪽
상가에서 효동이를 만난 어른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효동이에게 이것저것 묻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효동이는 상냥한 얼굴로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한다. 그다음에 어른들의 칭찬이 이어지는 것이 정해진 순서다. 그런데 효동이가 가고 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효동이를 보며 혀를 찬다. 밝고 상냥하고 예의 바른 효동이는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안쓰러운 아이가 되어 버린다. 효동이에게는 엄마가 없으니까. 게다가 그 엄마가 외국 사람이니 말이다. -본문 39쪽
마음이 너무 복잡하다. 뒤죽박죽이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엄마랑 지금처럼 살고 싶다. 엄마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또 다른 아이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게 싫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엄마가 행복하기를 그렇게 바랐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로 인해 행복해지는 것은 너무 싫다. -본문 78쪽
“쓸모없어 보이는 조각들도 모아서 꿰매면 멋진 작품이 되지 않냐? 사는 것도 그러면 좋겄다. 예나가 당장은 못 받아들이더라도 네 마음을 접지 말어. 할미는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남은 인생 쓸쓸하게 살지 말어. 남자 친구가 있으면 웃을 일도 많지 않겄어?” -본문 91쪽
그런데 나는 진짜 어른이 된 걸까? 이제 겨우 행복해진 엄마를 괴롭히고 슬프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불행하게 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며칠째 엄마도, 나도 힘들다.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자도 자는 것 같지 않다. 내가 난리를 친 뒤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 엄마와 아저씨의 결혼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아저씨랑 헤어져서 힘들어할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본문 94쪽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예나의 반에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잘생긴 고효동이 전학을 온다. 여덟 살에 아빠가 돌아가신 뒤 일찍 어른이 된 예나는 효동이의 외모에 반해 호들갑을 떠는 여자 아이들이 우습기만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효동이와 마주칠 일이 생기고, 둘은 한쪽 부모가 없는 불쌍한 아이들로 한데 묶인다. 효동이가 아기일 때 프랑스 사람인 엄마가 프랑스로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동정의 시선을 받는 건 딱 질색인 예나는, 그런 효동이와 엮이는 것도 불편한데 설상가상 엄마와 효동이 아빠의 관계가 수상하게 흘러간다. 무엇보다 엄마의 행복을 바랐지만 이건 아니다. 예나는 둘의 사이를 결사반대하고 나서는데, 막상 엄마가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열세 살 인생 최고의 갈림길에 선 예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