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은 툭하면 신입생을 가르치려고 들었는데, 다인이한테 걸리면 도리어 박살이 났다. 우리들이 한 살이나 더 먹은 선배가 낫겠지 하고 선배 쪽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다인이의 말에 쏠렸다. 다인이는 청산유수라는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타난 애 같았다.
다인이의 논리가 더 정연한 것 같고, 한참 이치에 합당한 것 같았다. 말로 안 되니까, 권위 · 나이 · 감정, 이런 것들을 앞세우는 선배들도 있었는데, 이런 선배들은 후배들 앞에서 개망신을 자초한 꼴이 되고는 했다.
폭력을 쓰는 선배도 있었다. 선배 값을 하지 못하는 선배들을 좆도 아닌 것으로 아는 우리의 동기 다인이도 폭력 앞에서는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인이의 태권도는 선배의 폭력마저 술집 바닥에 뭉개버렸다. 나중에 알았는데 태권도가 공인 3단이었다.
나는 다인이 같은 여자를 만화영화에서밖에 본 적이 없었다. 원더우먼이라고.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게 아니었던지, 다인이의 별명은 곧 윈더우먼이 되었다.
--- pp.67~68
'그래, 솔직히 말하면 먹고사는 일이 이렇게 장난이 아닐 줄 몰랐다. 먹고사는 일에 얽매이다 보니까 다 잊어버리게 되더라. 한총련이 내 신념 같은 거냐고 했었지? 그래, 신념이었지. 내가 한총련에 속해 있을 때에만. 내가 한총련을 떠난 순간 내게서 한총련은 없어진 거야. 한총련은 내 과거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지. 현재의 한총련은 그래서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야.'
--- p.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