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악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던 계집을 단 일각 만에 월궁항아처럼 변신시켰다지 뭐예요?”
“그 기생아이가 의금부에 가서도 별반 심한 고신(고문)을 받지 않은 것도 그리 곱게 단장한 덕분이라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아니 도대체 얼마나 화장 솜씨가 신통하기에요?”
“아주 귀신이래요. 귀신!”
“그래, 그 하늘이 냈다는 재주를 가진 이가 누구라고 합디까?”
“이름이 뭐랬더라? 무슨…… 붉은 꽃 이름인데…… 아, 그래요. 홍란, 홍란이라고 하더라고요!”
소문들이 으레 그렇듯이 살에 살을 덧붙여, 홍란의 이름은 어느덧 팔자를 바꿔줄 수 있는 신묘한 화장 솜씨를 가진 이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 p.37
“호랑이에 주상전하라. 하……”
홍란의 손을 잡고 있는 왼손을 놓을 생각도 않고, 성 의원은 의식을 잃은 여인을 보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다음은 옥황상제랑 엮일 참이오? 도대체 당신이란 여인은 얼마나 더 나를 놀라게 하려 이러는 거요?”
“으음……”
마치 성 의원의 물음에 답하기라도 하듯 홍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는 신음을 내뱉었다. 성 의원이 그런 홍란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으며 아이에게 하듯 나무라는 소리를 하였다.
“이제 그러지 마오? 또 한 번 이렇게 놀라게 하면 다음엔 정말 말도 못하게 쓴 약을 지어줄 것이오?!”
“으으음……”
또 다시 대답처럼 신음을 내뱉고 고개를 돌린 홍란을 보며, 성 의원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 p.88
“조금 뜨거우실 지도 모릅니다만, 견디실 만은 하실 겁니다.”
홍란이 그리 말한 후 뜨겁게 쪄진 면포를 만희의 얼굴 위로 가까이 가지고 왔다.
“시, 싫어!!”
만희는 겁에 질려 저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켜 반쯤 물러나 앉았다.
“그리 뜨거운 걸 얼굴 위에 놓겠다고? 너는 차마 손으로 집지도 못할 만큼 뜨거운 그것을?”
만희는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김이 폴폴 올라오는, 저 면포를 얼굴 위에 가져다 대었다가는 크게 데여 얼굴 살갗이 훌러덩 벗겨질 것만 같아 두려워졌기 때문이었다. 홍란이 이런 일을 하게 만든 만희 자신에게 악심을 품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제가 얼굴을 상하게 할까 두려우세요? 그리 겁이 나시면서 제가 올린 고본주는 어찌 드셨습니까? 그 안에 서서히 내장부터 썩어들게 하는 독을 넣은 지도 모르시고.”--- p.150
사라락.
물에 젖은 희고, 붉고, 푸른 꽃잎들이 새빨간 비단 손수건 위에 떨어져 내렸다. 홍란이 그 어여쁜 모양에 눈을 빼앗기고 있자니, 학이 마침내 다 비운 짚신을 홍란의 발 앞에 두었다.
“신어.”
홍란이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학을 보았다.
“설마 신겨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지? 신 정도는 스스로 신지 그래?”
신을 신겨주자면, 자연 무릎을 꿇어야 했다. 허나, 학은 그럴 수 없는 몸이었다. 아무리 이 여인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상대라 해도 여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여기…… 계십니까?”
홍란이 발에 신을 꿰며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이 사내는 매번 자신이 있는 곳에 이렇게 불현 듯 나타나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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