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연남생은 고구려를 공격하는 총대장을 맡을 뿐만 아니라, 당나라의 명을 받아서 고구려 지역의 민심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을 것이다.” 연남생이 당나라로 망명한 것은 요동 일대를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고구려가 멸망할 모양이로구나.” “대막리지를 맡았던 연남생이 당나라 신하가 되었으니 장차 고구려는 당나라에 멸망하고 말겠구나.” “고구려 지형에 대해 손금 보듯 훤히 아는 연남생이 당나라 앞잡이 노릇을 한다면 고구려를 패할 수밖에 없다!” “요동 땅은 큰 혼란에 휩싸였고, 그 우려는 순식간에 현실로 나타났다.--- ‘형제들의 싸움’ 중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온 천하에 건국 사실을 알리도록 하라! 동명성왕께서 나라를 세우셨을 때에도 우리보다 더한 고난을 겪고 대고구려를 이끄셨다! 우리는 고구려 정신을 그대로 물려받아 이 나라를 대제국으로 만들 것이다!” 고왕은 나라의 기틀을 잡은 뒤에 제일 먼저 동으로 빠져나와, 철의 생산지였던 위성을 점령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고왕이 동문산에 나라를 세웠다는 소식이 퍼져 나가자, 사방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 유민과 주변의 여러 부족들이 모여들었다.--- ‘진국의 탄생’ 중에서
발해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것은 조선 정조 임금 때인 1784년에 유득공이 펴낸 『발해고』다. 발해가 망하고 8백 년 만이었다. 유득공은 『발해고』 서문에 이렇게 기록했다. ‘고씨(고구려)와 부여씨(백제)가 망하고 김씨(신라)가 그 남쪽을 차지하였을 때, 북쪽에서는 대씨가 일어나 발해라고 하였다. 그러니 마땅히 『남북국사』가 3있어야 하는 것인데, 고려가 그것을 펴내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다. 장건장은 당나라 사람인데도 『발해국기』를 지었는데, 어찌 고려인 가운데서는 한 사람도 발해의 역사를 펴내지 않았던 말인가. 참으로 슬프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