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노와 비류, 온조는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패수(지금의 예성강)와 대수(지금의 임진강)를 건너 남쪽으로 향했다. 일행은 고구려를 떠난 지 열세 달 만에 한산(지금의 경기도 파주)에 이르렀다. 한산에 도착한 일행은 부아악에 올라가 거주할 만한 곳을 찾았다. 한산은 북한산을 말하며, 어머니가 아기를 업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인 부아악은(負兒嶽)은 바위 봉우리인 ‘인수봉’의 옛 이름이다.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북쪽으로는 한수가 흐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가 펼쳐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드넓은 들판이 있고 동쪽으로는 신성한 한산이 자리잡고 있으니, 나라를 세우기에 이보다 더 나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다’ 중에서
온조왕은 군사를 몰아 마한 땅인 금마(지금의 전북 익산시)를 공격했다. 그리고 백제의 수군도 기습적으로 상륙하여 금마를 점령하였다. “백제가 기습을 했다!” “군사들은 모두 백제군을 몰아내라!” 크게 놀란 마한 왕은 군사들에게 백제군을 물리치라는 명을 내렸다. “어림없다!” “사기 충천한 우리 백제군을 지친 네 놈들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백제의 기습을 받은 마한은 군사를 출동시켰지만, 무섭게 달려드는 백제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마한을 멸망시킨 백제’ 중에서
『삼국사기』[백제 본기]에도 그 일이 기록되어 있다. ‘온조왕 39년 봄 3월에 우박이 내렸는데, 그 크기가 달걀만하여 새들이 맞아 죽기도 하였다. 여름 4월에 가뭄이 들었으나 6월에 비가 내렸다. 한수의 동북 부락들에 기근이 심하게 들어 고구려로 도망친 사람들이 천여 호나 되었다.’그런데 이 기록에 나오는 내용은 서울 지역에 있던 백제가 아니라 만주 벌판에 있던 대륙 백제의 일이라는 것이다. 척박한 만주 벌판보다는 한반도 땅이 훨씬 비옥한데도 기근을 피해 멀리 만주 벌판까지 올라갈 리가 없다는 것이 된다. 또한 만주까지 가려면 낙랑을 거쳐야 하는데, 그 먼 지역까지 올라갔을 가능성은 희박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