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은 진사 시험에 합격한 후에 우연이라는 선비의 첩의 딸과 혼인했다. 우연은 고려 개국공신 연안 차씨 집안의 사위였다. “정운경이 비록 진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우씨 집안 사위가 되다니, 정말 운이 좋은 젊은이야.” “고려 땅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씨 집안이 아닌가. 우씨 집안과 정운경은 비교가 안 되는 명문가인데, 그 집의 사위가 되었으니 앞으로 출세 길이 활짝 열린 것이나 진배없지.” “무슨 소리야. 정윤경은 이미 초시에 합격한 성균관 학생이 아닌가. 그렇게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니까 우씨 집안에서 탐을 냈겠지.” “그렇지. 정윤경이 비록 명문가 출신은 아니지만, 귀족 가문과 혼사를 맺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공민왕의 배원정책과 원나라의 운명’ 중에서
귀양길에 오르게 된 정도전의 심정은 매우 복잡했다. “망해 가는 북원의 힘을 믿고 날로 커져가는 명나라의 힘을 누르려 하다니, 이인임이 고려를 또다시 수렁 속으로 처박고 있구나.” 정도전이 귀양을 떠나던 날, 조정의 관원들이 동문 밖에까지 나와 전송을 했다. 그때 염흥방이 배상도를 보내 말을 전하게 했다. “내가 이미 시중 이인임에게 말해서 노여움을 다스려놨으니 아직 떠나지 말고 며칠만 지체하시오.” 그러나 여러 사람들과 송별식을 하던 정도전은 화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정도전의 주장이나 시중(이인임)의 주장이나 모두 자기 생각을 고집한 것이며 나라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임금의 명령으로 귀양을 가는 것인데 어찌하여 그런 말로 귀양을 정지시킨단 말이오?” 그때가 정도전의 나이 서른여덟 살로 우왕 1년(1375년)의 일이었다. ---‘정도전의 귀양’ 중에서
“천하의 정도전이 목숨을 구걸하다니! 천하를 호령하던 정도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구나. 비록 한 때 혁명 동지였으나 지금 나는 공은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우린 이미 조선이 건국된 뒤에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지 7년이 지나지 않았는가. 공은 그동안 끊임없이 나를 죽이려했던 자인데 어찌 살려둘 수 있겠는가?” 이방원은 차갑게 말했다. “네가 조선의 봉화백이 되었는데도 부족하더냐? 어떻게 악하기가 이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느냐?” 이방원의 그 말과 함께 정도전의 목이 순식간에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