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유민이었던 흑치상지는 마침내 당나라 최고의 무장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나는 내 조국 백제를 버리고 당나라로 망명했다. 그러나 내가 더 비참해지지 않으려면 내가 맡은 일을 충실히 성공시키는 것이다. 내가 당나라에서 아무 역할도 못한다면 당나라 조정은 나를 헌신짝처럼 버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를 물론이고 당나라로 끌려온 백제 유민에게도 아무 희망이 없다.” 흑치상지는 비록 백제를 버렸지만, 당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백제 유민의 위상을 높이려 노력했던 것이다. --- '고구려 유민과 흑치상지' 중에서
탄구령 꼭대기가 가까워지자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벼랑길이 앞을 가로막았다. 벼랑길 밑으로는 인더스 강의 격류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저런 천길 만길 벼랑길을 지나가야 하다니! 우리를 여기에서 산송장으로 죽이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까지 와서 물귀신이 되기는 싫다. 절대로 앞으로 나가지 않겠다! 당장 회군하라!” 군사들은 공포에 떨며 크게 반발했다. 그때였다. 말을 탄 아노월 군사 20여 명이 달려왔다. 그리고 고선지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고 말했다. ---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중에서
중국 신강성 투르판에 있는 아스타나 고분군에서 고선지의 부하였던 장무가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그 무덤에는 고선지 관련 문서가 남아 있었다. 그 문서는 751년에 제작된 것으로, 고선지가 석국 정벌을 감행했던 이듬해였다. 그 문서를 보면 고선지의 석국 정벌이 얼마나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뤄졌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고선지는 석국 뿐 아니라 구국호와 돌기시까지 정벌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고선지가는 2차 서역 원정을 자신의 위력을 서역의 여러 나라에 과시하는 발판으로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선지는 아프가니스탄 동부 일대와 중앙아시아 깊숙이 진출했고, 중국은 역사상 가장 서쪽으로 뻗은 영토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고선지가 정복한 영역은 당시 당나라의 3/2에 해당하는 엄청난 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