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은 충녕을 세자로 책봉한 지 한 달 만에 선위 표명을 했다. “세자에게 선위하고 나는 상왕으로 물러나겠다!” 앞서 세 번의 선위 파동을 일으켜 양녕의 외가인 민씨 세력을 완전히 제거한 뒤, 네 번째 선위 파동이었다. “왕위에 오른 지 벌써 18년이 되었고, 그동안 홍수와 가뭄이 계속되었다. 지난 병술년에 왕위를 넘겨주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 후로도 제(양녕대군)의 행동이 규범에 맞지 않아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지금의 세자는 천성이 순진한 데다 재주가 뛰어나고, 사물에 정통하여 나라를 맡길 만하다. 세자로 책봉하던 날에 나는 벌써 왕위를 물려줄 것을 결심하고 마음이 편안했다.” 하지만 신하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고, 충녕도 두려워하며 옥새를 받지 않으려 했다. ---‘태종이 물려준 나라, 조선’ 중에서
“너무도 훌륭한 답안지여서 누구를 떨어뜨려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시험관들이 답안지를 내밀자 세종은 꼼꼼하게 답안지를 읽었다. “누구를 떨어뜨린 것이 옳겠습니까?” “왜 떨어뜨릴 생각만 하시오? 둘 다 합격시키면 떨어질 사람이 없지 않겠소?” “두 답안지가 모두 훌륭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두 명을 장원으로 선발한 적은 없습니다.” 시험관들이 세종의 의견을 반대했다. “아직껏 두 명을 장원으로 선발한 적이 없었다면 이번에 처음으로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오. 둘 다 장원으로 선발하도록 하시오.” 세종의 뜻에 따라 그 날 장원에 선발된 두 사람은 성상문과 하위지였다. ---‘세종의 자식 사랑’ 중에서
세조는 박팽년, 유응부, 이개, 하위지, 유성원 등도 차례로 불러 자기 신하가 되어 줄 것을 강요했다. “나의 신하가 되어 이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도록 하시오. 나또한 어린 조카를 밀어내고 보위에 오른 심정이 편치만은 않소.” 그러나 누구도 세조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목을 단칼에 베어 버리지 못한 것이 억울할 따름이오. 우리 죄가 있다면 억울하게 쫓겨난 우리 임금님을 다시 왕위에 앉혀 드리려 했던 것뿐이오. 그것은 돌아가신 세종대왕의 유언을 받드는 것이었고, 신하된 자로써 마땅히 해야 될 도리였소. 어느 간사한 놈이 고자질을 하여 이 지경에 놓였으니 군소리 집어치우고 어서 목을 치시오!”